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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인산 김일훈 74] 한의학 새 지평, 평생 뭇생명 구제 ‘의황’
1992년 3월 3일, 인산은 자식들을 모두 불러 모아놓고 후세에 남기는 마지막 유언을 하였다. 유언이라고 해서 일반인들처럼 ‘무슨 재산을 어떻게 처리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이 나라와 백성들이 인간으로서 올바로 살고, 사는 동안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일러주는 내용이었다. “……인업(人業)을 중시하는 나라가 잘살게 되는 법이야. 자원 중에 으뜸이 국민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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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산 김일훈 73] 인류를 병마에서 구제할 ‘신약본초’ 남기고
함양에 내려와서 6년 동안 인산은 노구(老軀)를 돌보지 않고 찾아오는 환자들을 상대했고, 틈틈이 공개 강연회를 열어 자신이 알고 있는 신의학(神醫學)의 비밀을 세상에 알렸다. 이제 자신이 임종의 때를 맞을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쇠 현상에 따라 기울어가는 가는 그의 기력을 돋울 방법은 편안한 휴식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인산은 “내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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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 김일훈 72] 세상을 구하기 위해 왔던 ‘큰 빛’
1988년, 어느덧 인산의 나이 팔십 하나였다. 술을 통해서나마 무지한 현실을 망각하고 싶어했고 고통뿐인 지구를 한번 떠나면 두 번 다시 오지 않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인산의 육신도 어느 덧 기운이 다하여 쓰러지게 되었다. 인산이 드러눕자 그 해 정월에 결혼하고 서울에서 살던 3남 윤수의 처 최은아는 병수발을 위해 함양 인산의 오두막으로 내려와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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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 김일훈 71] “지리산 초막은 지구촌 최고의 암센터였다”
<신약>의 출간 이후 난치병으로 꼼짝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던 전국의 암환자들이 지리산 도사를 찾아 함양으로 몰려들어와 인산은 평생 그러하듯이 무료 처방을 써주었고 말기암으로 병원에서 포기한 환자들은 처방전을 받아들면 함양읍내에 있는 건재약방으로 달려갔다. 당뇨, 고혈압, 간암, 폐암, 신장암, 위암, 뇌종양, 백혈병, 황달을 비롯하여 에이즈, 골수암, 베체트, 근위축증, 흑색암, 섬유종, 루게릭, 별별 듣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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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 김일훈 70] 중병 앓는 뭇생명 건진 ‘우주와 신약’
인산은 1957년 처음으로 경상남도 함양 땅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두세 차례에 걸쳐 2~3년씩 그곳에 내려가 산 적이 있다. 그러다가 73세가 되던 1981년에는 아주 내려가 그곳 사람이 되었다. 함경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주로 평안북도에서 보내면서, 그때에도 수차례 낯선 곳으로 이주하면서 살았다. 특히 16세 이후로는 독립군으로 일본군에 쫓기면서 국경을 넘어 만주, 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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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 김일훈 69] 화상환자를 완치시키다
인산이 수송동에서 살던 시절은 여러 모로 뜻있는 시기였다.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변함없이 수많은 난치병 환자들을 일으켜 세워 새로운 인생의 활로를 열어주었던 보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다량의 오핵단을 제조하여 그 신비한 효능을 거듭 확인한 것도 그 시기였다. 사사로운 이해타산으로 몰지각한 사람들이 인산에 대해 빚어낸 구설수를 겪은 시기이기도 하였으나. 그것은 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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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 김일훈 68] 수송동 혈액은행 시절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종전까지 혈액은행으로 사용하던 건물이 있었다. 개인 소유의 그 건물은 대지 2백여 평에 연건평 60여 평의 2층 구조였는데, 소유자가 그 건물을 담보로 하여 외환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을 갚지 못하여 경매에 처해지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의 외환은행장이 인산에게서 입은 개인적인 은혜를 갚는다는 뜻에서 경매 신청을 뒤로 미루고 인산으로 하여금 3년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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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 김일훈 67] 소경의 눈을 뜨게 하다
서울 광나루 부근의 어느 절에 법명(法名)도 없이 그저 ‘어(魚) 대사(大師)’라고 불리며 지내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승려도 아니었고, 오랜 세월 동안 그 절에서 더부살이를 하는 사람이었는데, 17세 때 열병을 앓다가 시신경(視神經)에 염증이 생겨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소경이 된 직후부터 그는 부처의 가피(加被)를 받아 눈을 뜨겠다는 일념으로 절에서 생활하며 기도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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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 김일훈 66] 드러내놓을 수 없는 병, ‘간질’을 치료하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세상은 마치 새로운 천지가 열리기라도 한 듯 들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의 변화라는 것조차도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인산은 잘 알고 있었다. 만년(萬年) 대통령으로서 영원한 권력을 구가할 것 같았던 이승만 박사도 ‘독재자’라는 오명을 피하지 못하고 쫓겨나지 않았던가? 어찌하여 사람들은 영원한 것을 추구한다고 하면서 결국은 순간에 탐닉하며 변하고 썩게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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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 김일훈 65] 결핵성 척수염을 치료하다
인산은 해방 이후 이북에서 아내를 데려온 이후로 1992년 사망할 때까지 도합 여든 번의 이사를 하였다.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2~3년간 머물러 살던 곳에서 또 다른 거처를 향해 변변치 않은 이삿짐을 싸고는 했다. “내가 그렇게 많은 환자들의 병을 고치면서 이사를 자주 했던 이유가 뭔 줄 아나? 나하고 인연이 닿는 환자들을 찾아다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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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 김일훈 64] 독극물 중독자 치료···꺼뜨릴 수 없는 생명의 불꽃
1967년 봄, 서울 중구 충무로 5가에 위치한 성혜(聖惠)한의원의 현관문을 요란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이미 외출 채비를 갖추고 있던 인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20여 분 전에 전화로 다급하게 외쳐 대던 조○○ 사장이 문 밖에 도착한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벽에 걸린 시계는 새벽 한 시 반을 막 지나고 있었다. “주무시고 계셨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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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 김일훈 63] 척추장애인 뜸으로 치료
기적일까 신의 조화(造化)일까 박인순(가명)은 어렸을 때 감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한동안 앓은 뒤에 등뼈가 구부러진 척추 장애인이었다. 그 뒤로 ‘꼽추ㆍ곱사등이ㆍ병신’ 따위의 놀림을 받으며 자랐고, 나이 30이 넘었지만 바깥세상에 나가기조차 두려워하는 심약한 여성이었다. 결혼은 물론 하지 못했고, 이따금 들어오는 중신 자리는 하나같이 장애인 신랑감들이었다. ‘병신들끼리 짝을 맞춰 살라.’는 빈정거림으로 느껴져 거들떠보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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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 김일훈 62] 국적·인종·신분 관계없이 오직 질병 치료에 혼신의 힘
인산은 약속시간에 맞추어 서울 삼각지 로터리 한켠에 자리잡은 OO다방으로 갔다. 미군부대에서 일하는 남씨 성을 가진 문관(文官) 한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그의 간청에 따라 그날 그 자리에서 미국인 위암환자를 소개받기로 하였던 것이다. 다방에는 남 문관과 부부 사이로 보이는 중년의 미국인 남녀가 이미 와 있었다. 대화는 남 문관의 통역으로 이루어졌다. 자신을 앤드류(Andrew)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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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 김일훈 61] ‘운명’…두살배기 윤수 남기고 떠난 아내 장영옥
인산의 아내 장영옥은 가녀린 몸에도 정신만큼은 평안도 출신의 여성답게 강인하였다. 어린 나이에 천하에 다시 없을 특이한 남편을 만나 그의 등 뒤에서 온갖 신고(辛苦)를 겪으면서도 불평 한마다 발하는 법 없이 묵묵히 감내하며 지아비를 따르고 섬겨온 여성이었다. 그녀는 몇 해 전, 그러니까 계룡산 서문달 쪽에 살 때 단오 그네를 뛰다 사고를 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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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 김일훈 60] 함양 삼봉산 살구쟁이의 ‘김함배기’
애초에 인산이 함양으로 간 데에는 운둔하고자 하는 뜻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함태영 부통령과 김병로 대법원장을 중간에 내세워 이기붕을 차기 부통령으로 해서 자신이 4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도록 협조해 줄 것을 인산에게 부탁해 왔었다. 결국 독립운동을 했던 선배들의 강권에 못 이겨 끝까지 거절하지 못하고 이승만 정권의 튼튼한 지지세력의 역할을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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