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사카성에 가본 적이 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동상도 보았고, 그가 다도의 애호가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성은 생각보다 훨씬 거대했다. 높은 석축과 깊은 해자는 적이 쉽게 접근할 수 없도록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왜 오랫동안 난공불락이라 불렸는지 직접 보니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견고한 성은 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함락되었을까.
해설사의 설명은 의외였다. 겨울 전투 뒤 맺어진 평화협정에 따라 해자(moat)를 메우도록 허용한 것이 결정적이었다는 것이다. 성벽은 그대로였지만 성을 성답게 만들던 방어선이 먼저 사라졌다. 다음 해 여름, 오사카성은 결국 함락되었고 히데요시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와 측근들은 모두 최후를 맞았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바티칸 박물관에서 보았던 라오콘 군상이 떠올랐다. 트로이의 사제 라오콘은 그리스군이 남겨둔 목마를 성안으로 들이지 말라고 외쳤다. “나는 선물을 들고 오는 그리스인을 경계한다(Timeo Danaos et dona ferentes).” 그러나 그의 경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뱀에게 죽임을 당했고, 사람들은 목마를 성안으로 들였다. 트로이는 그날 밤 무너졌다.
오사카성과 트로이는 시대도 다르고 무기도 다르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 적이 마지막 공격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방어의 문이 안에서부터 열렸다는 점이다.
손과 얼굴을 다친 기갑병들을 수술할 때면 나는 종종 한국전쟁 이야기를 한다. 1950년 6월, 북한군의 소련제 T-34 전차가 남하할 때 우리에게는 이를 막을 만한 전차도, 충분한 대전차 화기도 없었다. 죽미령에서 스미스부대는, 천안에서는 마틴 대령이, 대전에서는 딘 소장이 절망적인 여건 속에서 시간을 벌기 위해 싸웠다. 그들의 희생은 패배의 기록이 아니라, 방어수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역사였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성을 지키는 것은 높은 성벽이 아니라 해자이며, 나라를 지키는 것은 평화를 바라는 마음만이 아니라 평화를 지킬 준비이다.
고대의 트로이에서, 에도 시대의 오사카성에서, 그리고 한국전쟁의 전장에서 역사는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그러나 평화는 선의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스스로를 지킬 힘을 잃는 순간, 평화는 가장 먼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는 성벽이 무너진 날보다, 해자가 메워진 날을 먼저 기억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