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칼럼

빌라도의 ‘예수 재판’이 던지는 질문…“손을 씻겠는가, 아니면 눈을 뜨겠는가?”

빌라도가 물을 떠서 손을 씻은 것은, 사실 자신의 양심을 씻어내기 위한 의식이었다. 2천 년 전의 이 장면은 오늘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내가 지나온 병원, 군의관들이 있는 현장, 회의실과 브리핑룸에서도 사람들은 가끔 “내가 한 결정이 아니다”, “규정이 그렇다”, “상부의 지침이다”라는 말로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나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한 판단’은 언제나 달콤한 유혹이다.(본문에서) 사진은 김민기 작사 작곡 ‘친구’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는 성삼일이 다시 시작된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자연스레 골고다 언덕의 장면들이 떠오르지만, 나는 유난히 한 사람에게 시선이 멈춘다. 바로 로마 총독 본시오 빌라도(Pontius Pilatus)다. 그는 복음서에서 이상하리만큼 ‘부드러운 얼굴’로 그려진다. 예수를 세 번이나 무죄라고 선언하고, 아내의 꿈 이야기를 듣고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자신의 책임을 부정한다. 심지어 요한복음에서는 철학적 질문까지 던진다. “진리가 무엇이냐?”

하지만 역사가 기억하는 빌라도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유대 역사학자 요세푸스와 알렉산드리아의 필로가 기록한 그는, 종교적 감수성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폭력으로 통치하던 냉혹한 인물이었다. 사소한 소요에도 잔인한 진압을 망설이지 않던 통치자. 이런 사람이 정말로 “예수의 무죄를 증언한 약자”였을까?

복음서의 표현과 역사적 기록 사이의 간극은 크다. 학자들은 그 이유를 초기 기독교의 생존 전략에서 찾는다. 사도들과 초기 교부들은 로마제국의 그늘 아래 살았다. 기독교가 “정치적 반역운동”으로 오해받으면 공동체는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었다. 그래서 복음서들은 자연스럽게 빌라도의 책임을 희석시키고, 체제에 대한 반감이 없다는 메시지를 부드럽게 담아낼 필요가 있었다.

이것은 신학 논리가 아니라 역사적 현실의 언어, 곧 생존의 언어였다.

그러나 정작 빌라도가 보여준 행동은 너무나 현대적이다. 그는 예수가 무죄임을 알았다. 그럼에도 폭동의 위험, 황제의 심기, 자신의 관직과 커리어를 더 걱정했다. ‘정의’와 ‘진실’보다 내 자리, 내 평판, 내 책임 회피가 우선된 것이다.

빌라도가 물을 떠서 손을 씻은 것은, 사실 자신의 양심을 씻어내기 위한 의식이었다.

2천 년 전의 이 장면은 오늘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내가 지나온 병원, 군의관들이 있는 현장, 회의실과 브리핑룸에서도 사람들은 가끔 “내가 한 결정이 아니다”, “규정이 그렇다”, “상부의 지침이다”라는 말로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나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한 판단’은 언제나 달콤한 유혹이다.

그래서 성삼일의 문턱에서 다시 그 질문이 올라온다. 나는 누구의 편에 서고 있는가? 진실을 알지만 침묵하는 자의 편인가, 아니면 두려움 속에서도 진실을 붙드는 자의 편인가?

결국 빌라도는 야유와 폭동이 두려워 진실 앞에서 물러섰다. 군중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는 ‘군중이 원하는 지도자’가 되었지만, 정작 ‘진실이 요구하는 인간’은 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문득 묻게 된다. 오늘 우리의 사회, 조직, 병원, 군대… 그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손을 씻는 빌라도가 되고 있는가.

성삼일은 단지 슬픔의 시간이 아니다. 우리의 작은 판단과 회피를 비추는 거울 같은 시간이다. 두려움 때문에, 체제 때문에, 혹은 상처받기 싫어서 우리가 외면한 진실들이 다시 떠오르는 시간. 그래서 결국 역사는, 그리고 이 사흘의 시간은 언제나 같은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그대는 손을 씻겠는가, 아니면 눈을 뜨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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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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