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옮겨진 기념탑, 남겨진 질문
기념탑을 찾으러 갔다가, 나는 오히려 기억을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천안삼거리공원을 먼저 찾았다. 분명 그곳에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원을 몇 바퀴 돌아도, 내가 찾는 천안 2·9 의거 기념탑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서서 생각했다. 기념탑이 사라질 리는 없을 텐데, 그렇다면 내가 기억을 잘못 찾아온 것일까. 검색을 해보니, 기념탑은 이미 2019년에 다른 곳으로 옮겨져 있었다. 나는 다시 길을 돌렸다. 이번에는 태조산공원이었다.

등산로 입구, 호국공원이라 불리는 곳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그것은 모습을 드러냈다. 그 곁에는 천안함 피격 사건 추모비와 천안함 모형이 함께 서 있었다. 서로 다른 시대의 비극이 한 공간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 사이에 서 있었다. 하나는 1946년의 함성이었고, 다른 하나는 2010년의 침묵이었다. 2·9 의거 기념탑의 비문은 길고, 한문이 많았다. 문장은 장중했지만, 쉽게 읽히지 않았다. ‘자유’, ‘의거’, ‘호국정신’-익숙한 단어들이었지만, 그것들이 가리키는 실제의 시간과 사람들은 그 문장 속에서 어딘가 멀어져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 있었지만, 그날의 일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다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날은, 과연 어떤 날이었을까. 기념비는 그것을 ‘무혈 평화적 의거’라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기록들은, 그 이후에 닥쳐온 일을 말해주고 있었다. 투옥, 그리고 한국전쟁 속에서의 죽음. 그날 피를 흘리지 않았던 선택은, 정말로 피를 남기지 않았던 것일까.
나는 그 자리에서 문장 하나를 떠올렸다. 그날은 분명 피를 흘리지 않은 승리였으나, 역사는 그 빚을 끝내 피로 갚게 하였다. 기념탑은 서 있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한때는 천안삼거리공원에 있었고, 이제는 태조산공원으로 옮겨와 있었다.
기억도 그런 것이 아닐까. 그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리를 옮긴다. 우리가 더 이상 찾지 않는 곳에서, 다시 찾아가야 할 곳으로.

나는 돌아오는 길에 뒤를 한 번 더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여전히 기념탑이 서 있었고, 그 옆에는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이름들이 함께 서 있었다. 함성은 들리지 않았다. 함성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다만 우리가 더 이상 듣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