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사순절 다시 읽는 카잔차키스의 ‘예수의 마지막 유혹’…십자가 고난을 의학으로 해석하다

이 글은 Journal of Trauma and Injury에 게재된 황건·박찬용 교수의 논문 「The Last Temptation of Christ as terminal hallucination」의 내용을 바탕으로, 사순절을 맞아 예수의 십자가 고난 장면을 의학적 관점에서 다시 이해할 수 있도록 핵심 내용을 정리해 소개한 것입니다. 원 논문은 카잔차키스의 소설과 스코세이지 영화 속 ‘마지막 유혹’을 저혈량 쇼크와 임종 환각 현상으로 해석하며 문학과 의학의 접점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모르는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그는 인간의 자유와 신앙, 고통과 구원을 집요하게 탐구했던 20세기 대표적인 문학가였다.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큰 논쟁을 불러일으킨 소설은 <예수의 마지막 유혹(The Last Temptation of Christ)>이다. 이 작품은 예수의 신성을 부정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비판을 받았고, 1988년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로 제작되면서 다시 한 번 세계적인 논쟁의 중심에 섰다.

사순절을 보내는 요즘, 나는 지난해 발표된 한 의학 논문을 다시 읽게 되었다. 논문의 제목은 매우 독특하다. “The Last Temptation of Christ as terminal hallucination: a trauma surgeon’s interpretation of hypovolemic shock in literature and film”

직역하면 “예수의 마지막 유혹을 임종 직전 환각으로 본 외상외과 의사의 해석” 정도가 된다. 이 논문은 한국 외상외과 의사들이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것으로, 십자가 위에서 예수가 겪는 ‘환상 장면’을 신학이 아니라 의학적으로 해석한 매우 흥미로운 시도다.

논문의 핵심 주장은 단순하다. 십자가형과 같은 극심한 출혈 상태에서는 저혈량 쇼크(hypovolemic shock), 저산소증, 의식 혼탁, 해리(dissociation), 시간 왜곡, 임종 직전 환각 같은 현상이 실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카잔차키스의 소설과 스코세이지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마지막 유혹’ 장면이 바로 이러한 생리적 상태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고 분석한다.

십자가는 상징이 아니라 실제 고통이었다는 사실이다. 카잔차키스가 그 고통을 문학으로 그렸다면, 외상외과 의사들은 그 고통을 생리학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그 둘은 놀랍게도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영화에서 예수는 십자가에서 내려와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환상을 본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늙어가며, 평범한 삶을 사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그것이 환상이었음을 깨닫고 다시 십자가로 돌아간다. 논문은 이 장면을 종교적 상징이 아니라 임종 직전 뇌가 만들어내는 마지막 의식 현상으로 해석한다. 외상외과 의사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중증 출혈 환자들에게서도 비슷한 보고가 있다는 것이다.

환자들은 종종 꿈 같은 장면을 본다고 말한다. 이미 죽은 가족을 만났다고 하거나, 평화로운 장소에 있었다고 하거나, 시간이 매우 빠르게 흘렀다고 느낀다고 한다. 논문은 이러한 현상이 뇌 저산소 상태, 카테콜아민 분비 증가, REM 수면 침투, 말기 신경 활동 증가 같은 생리학적 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마지막 순간의 ‘맑아짐’이다. 많은 임종 환자들이 죽기 직전 잠시 또렷해지는 현상을 보이는데, 영화에서 예수가 환상에서 깨어나 “다 이루었다(It is accomplished)”라고 말하는 장면이 바로 그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논문은 이 해석이 신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예수를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카잔차키스의 작품은 신성을 부정하려 한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사명을 선택하는 인간의 의지를 보여주려 한 것이라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보면 그 순간은 뇌가 마지막으로 만들어낸 환상일 수 있다. 그러나 문학적으로 보면 그것은 인간이 환상을 거부하고 진실을 선택하는 순간이다.

사순절은 예수의 고난을 묵상하는 시간이다. 그 고난을 신학으로만 볼 수도 있고, 문학으로 볼 수도 있고, 의학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보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십자가는 상징이 아니라 실제 고통이었다는 사실이다. 카잔차키스가 그 고통을 문학으로 그렸다면, 외상외과 의사들은 그 고통을 생리학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그 둘은 놀랍게도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사순절에 이 논문을 다시 읽으며, 나는 십자가의 이야기가 신앙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 아시아엔 후원계좌 ▼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아시아엔과 아시아 저널리즘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우리은행 1005-601-878699 (주식회사 아자미디어앤컬처)

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본 광고는 Google 애드센스 자동 게재 광고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합니다.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