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총성과 영웅 뒤에 남은 트라우마…한국 전쟁영화에 나타난 PTSD 심리학

영화 고지전의 고수와 신하균(왼쪽)

이 글은 국군수도병원 성형외과 황건 전문의가 발표한 논문 「Symptoms of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depicted in military movies from Korea」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국 전쟁영화에 나타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특징과 그 의미를 독자 여러분께서 보다 쉽게 이해하실 수 있도록 핵심 내용을 정리해 소개한 것입니다. 원 논문은 영화 속 전쟁 트라우마 묘사가 실제 임상 현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분석하고 있으며, 본 글에서는 이를 통해 전쟁이 남긴 심리적 상처와 우리 사회의 인식 문제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전쟁영화는 총성과 폭발, 영웅과 희생을 보여주는 장르로 알려져 있지만, 그 이면에는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깊은 정신적 상처가 존재한다. 국군수도병원 성형외과 황건 전문의가 발표한 최근 논문은 한국 군사영화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의 증상을 분석하며,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온 전쟁 서사가 실제로는 심리적 외상의 기록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태극기 휘날리며> 포스터

이 연구는 한국전쟁, 베트남전, 제2차 세계대전 등을 배경으로 한 영화 가운데 PTSD 증상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작품 9편을 선정해 분석했다. 선정된 작품에는 <웰컴 투 동막골>, <태극기 휘날리며>, <고지전>, <장사리>, <포화 속으로>, <마이웨이>, <국제시장>, <작은 연못>, <빨간 마후라> 등이 포함된다.

연구 결과, 거의 모든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은 플래시백, 죄책감, 감정 둔마, 불안, 과각성 상태였다. 특히 전우의 죽음을 목격하거나 반복되는 전투를 경험한 인물일수록 이러한 증상이 강하게 나타났다.

예를 들어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는 전쟁을 겪으며 형제 관계가 무너지고, 생존자 죄책감과 감정 마비가 반복적으로 묘사된다. <고지전>에서는 전투가 끝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병사들이 점차 무감각해지고 절망에 빠지는 모습이 나타난다. <포화 속으로>와 <장사리>에서는 경험이 부족한 젊은 병사들이 극도의 공포와 불안 속에서 심리적 붕괴를 겪는다.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영화에서 PTSD 치료 과정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신 전우애, 가족, 희생, 또는 개인적 결심 같은 방식으로 고통을 견디는 모습이 강조된다.

연구자는 이러한 특징이 한국 사회의 군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고 본다. 정신과 치료에 대한 낙인, 조직 중심 문화, 그리고 약함을 드러내기 어려운 분위기가 치료를 회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영화 속 전쟁 트라우마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기억으로 남는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도 영화를 통해 전쟁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배우게 되고, 그 과정에서 PTSD에 대한 인식 역시 형성된다. 논문은 이러한 영화들이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문화적 텍스트로서 PTSD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만들고 동시에 왜곡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많은 영화가 비극적 결말이나 운명론적 서사를 선택하면서, 회복 가능성보다 절망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문제로 제기된다.

연구자는 영화가 치료에도 활용될 수 있다고 본다. 노출 치료나 인지 치료 과정에서 영화 장면을 활용하면 환자가 자신의 기억을 보다 안전한 방식으로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 임상에 적용할 때는 영화 속 과장된 묘사나 비현실적 결말이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결국 전쟁영화는 전쟁의 기록이 아니라 상처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상처는 전장을 떠난 뒤에도 오래 남는다. 우리가 전쟁영화를 다시 보아야 하는 이유는 승리와 패배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 남아 있는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 아시아엔 후원계좌 ▼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아시아엔과 아시아 저널리즘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우리은행 1005-601-878699 (주식회사 아자미디어앤컬처)

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본 광고는 Google 애드센스 자동 게재 광고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합니다.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