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간 마후라 3절…하늘에 피고 지는 사나이란다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가진 아버지라면 한 번쯤 아들이 그 길을 이어주기를 바랄 것이다. 군인이나 경찰, 소방관처럼 제복을 입는 직업은 물론이고 학자나 교사 같은 전문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쟁의 역사 속에서는 이런 바람이 때로 더 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국전쟁 당시 미 제8군 사령관이었던 워커(Walton H. Walker) 중장의 외아들 샘 워커는 중위로 미 제24보병사단 제19보병연대 A중대장이 되어 낙동강 돌출부 전투에 투입되었다. 아버지는 “서서 막든지 아니면 죽어라(Stand or Die)”라는 명령을 내렸다. 아들도 그 명령 속에서 싸워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훈장 수여식에 참석하러 가던 길에 교통사고로 순직하였다.
이어 제8군 사령관이 된 밴플리트(James A. Van Fleet) 장군에게도 외아들이 있었다.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밴플리트 주니어(James Alward Van Fleet Jr.)는 1952년 B-26 폭격기 조종사로 압록강 남쪽 보급로 차단 작전에 출격했지만 돌아오지 못했다.

나는 오랫동안 이런 이야기들을 읽으며 묘한 마음이 들었다. 군인의 아들이 다시 전쟁터로 나가는 이야기들이 대부분 미국 군대의 역사 속에만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며칠 전 화령장전투전승기념관을 찾았다. 전시관에 비치된 책을 넘기다가 한국 공군 조종사 유치곤 장군(1927-1965)의 이야기를 다시 읽게 되었다. 한국전쟁 동안 200회가 넘는 출격을 했던 조종사다. 그의 고향인 대구 달성군에는 그의 이름을 딴 기념공원이 있다.
나는 14일 새벽에 길을 나섰다. 서울에서 네 시간쯤 달려 비슬산 기슭에 도착했을 때 공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낙하산을 멘 채 서 있는 장군의 동상은 산을 등지고 서 있었고, 아침 해가 그 등 뒤에서 떠올라 논 위로 빛을 던지고 있었다.
‘유치곤길’ 옆에는 공군가 <빨간마후라>가 새겨진 시비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 작은 흉상이 하나 더 있었다.

유용석 소령.
공군사관학교를 26기로 졸업하고 조종사가 되었지만 1982년 2월 제주에서 비행 중 순직했다. 임관한 지 4년쯤 되었을 때였다. 아버지의 큰 동상 옆에서 그 흉상은 한쪽 구석에 조용히 서 있었다.
나는 잠시 그 앞에 서 있었다. 아침 공기가 차가워 손이 시려웠다.
그는 나보다 두 살쯤 위의 세대였다. 내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공군 군의관으로 임관한 것이 1983년이니, 그가 조금만 더 오래 살았더라면 공군의 어느 활주로에서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옆의 시비에 적힌 노래 3절을 천천히 읽었다.
“부르지 말아다오 내 이름 석자
하늘에 피고 지는 사나이란다.”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나는 그 노래를 혼자 불러 보았다. 차가운 아침 공기 속에서 목이 조금 쉬어 갔다. 돌아오는 길에 그 노래를 다시 들었다.
평소에는 씩씩하게 들리던 노래였는데, 그날은 조금 쓸쓸하게 들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