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 새벽 첫 포성이 울린 지 불과 사흘 만에 수도가 무너졌다. 전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950년 여름, 우리는 거의 매일 얻어맞으며 남쪽으로 밀려났다. 미군의 첫 지상부대였던 스미스부대(Task Force Smith)도 그 충격을 막아내지 못했고, 딘 소장(William F. Dean)도 대전 전투에서 포로가 되었다.
전선은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훗날 권투선수 타이슨(Mike Tyson)이 말했듯이, “누구에게나 그럴싸한 계획은 있다. 얻어맞기 전까지는.”
얼마 전 나는 충북 음성으로 향했다. 산길을 따라 먼저 찾은 곳은 감우재 전투의 현장이었다. 전쟁 초기 국군이 처음으로 버티며 반격한 곳이다. 큰 승리는 아니었지만, 계속 밀리기만 하던 군대에게 “우리도 싸울 수 있다”는 감각을 되찾게 해준 순간이었다.
터널을 몇 개 지나 왼편으로 들어가자,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 입구에 ‘감우재 전승기념관’이 나타났다. 토요일이라 문은 닫혀 있었지만,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감우재 전승기념탑이 서 있었다. 그 위쪽으로 더 오르자 또 하나의 공간이 나왔다. 상주 출신 순국선열을 기리는 충혼탑과 충혼당이었다. 독립운동가, 한국전쟁 전사자, 그리고 월남전 참전 전사자들의 위패가 함께 모셔져 있었다. 조금 내려오면 월남전 참전 기념탑이 있고, 그곳에는 상주 출신 참전용사들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그곳에 서 있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감우재의 작은 반격은 단지 하루의 전투가 아니라, 그 뒤 세대의 역사와도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었다. 독립운동, 6·25, 그리고 월남전까지. 서로 다른 전쟁이지만 이름들은 한 고장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한 줄로 이어져 있었다.
그 길을 지나 나는 경북 상주 ‘화령장 전투’의 현장도 찾았다. 밀리면서도 돌아서서 제대로 한 번 때린 매복전이었다. 지역 주민의 제보로 적의 이동을 파악했고, 17연대 수색대는 인민군 전령을 붙잡아 작전명령서를 노획했다. 민·관·군이 함께 만든 반격이었다.

전승기념관 안에서 나는 17연대의 부대기를 한참 바라보았다. 바탕에는 태극의 색이 깔려 있었다. 우상방은 붉은색, 좌하방은 푸른색이었다. 가운데에는 숫자 17이 크게 적혀 있었고, 그 양옆에는 두 마리 호랑이가 마주 보고 앞발을 들고 서 있었다. ‘쌍호(雙虎)’라 불리는 17연대의 상징이었다.
벽에는 부대가도 적혀 있었다.
“설악의 정기 받은 쌍호의 용사
산악을 주름잡는 민족의 초병
화령장 전투에서 적을 쳐부수고
수도를 탈환했던 친위의 부대…”
그 노랫말을 읽으며 나는 전쟁 초반의 모습을 떠올렸다. 전쟁 초반 우리의 얼굴은 많이 얻어맞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감우재와 화령장에서는 그 얼굴에 조금씩 자존심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역사는 언제나 거대한 승리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밀리면서도 한 번 돌아서서 때린 작은 반격이, 한 나라의 마음을 다시 세우기도 한다.
지금도 연대 안에는 두 마리 호랑이의 ‘쌍호상’이 서 있다고 한다. 병사들 사이에는 그 호랑이를 만지면 무사히 전역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전해진다. 전쟁을 준비하는 군대에서도 결국 사람들의 소망은 단순하다. 살아 돌아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