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 한 달 전, 용산 전쟁기념관 UN실에서 한국전쟁 중 전사한 외국 종군기자들의 이름을 보았다. 그 숫자는 열여덟 명이었다.
이 이야기를 나와 같은 연배의 현역 기자에게 전했더니, 그는 파주 평화공원에 ‘한국전 순직 종군기자 추념비’가 있으며 매해 추도식이 열린다고 알려주었다.
종군기자는 총 대신 공책과 카메라를 들고 전장을 기록하는 전쟁의 ‘증인’이다. 군의관이나 의무병처럼 비전투요원이지만, 포격과 전선 붕괴의 혼란 속에 그대로 노출된다. 그래서 나는 그곳을 찾았다.
휴전선이 가까운 파주의 평화공원에는 개마고원 유격대와 송악산 육탄 10용사의 기념비가 서 있었다. 그 사이에서 종군기자 추념비는 말린 종이와 펜을 쥔 손의 형상으로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정면 동판에는 전쟁 중 사망한 기자 18명의 한글 이름과 영문 이름, 소속 언론사, 사망일이 날짜 순으로 새겨져 있었다. 죽음조차 기록의 질서 속에 놓여 있었다. 역시 기자다웠다.
미국 10명, 영국 4명, 프랑스 2명, 한국 1명, 필리핀 출신 UN 공보관 1명. 그중 대부분은 전쟁 발발 직후 석 달 사이에 목숨을 잃었다. 1950년 7월 27일 하루에 네 명, 9월 7일에는 세 명이 전사했다. 전선이 가장 격렬하게 요동치던 시기였다.
언론사별로는 미국 International News Service(INS, 현 UPI) 소속이 네 명, 프랑스 AFP 기자가 두 명이었다.

비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여기는 보도의 명예와 승리가 서린 곳… 먹물은 스러져도 기자의 얼은 푸르다. (Their pens have now run dry, but their righteous spirit will live forever.) 그 영광의 희생 길이 정의를 밝히리.”
나는 목숨을 걸고 글을 쓴 적이 없다.
그들이 나를 본다면 묻지 않을까.
“너는 무엇을 걸고 쓰는가.”
언덕의 계단을 내려오다 다시 돌아보았다. 1977년 추모비를 세울 때 심은 소나무는 자라 비석을 조금 가리고 있었지만, 펜을 쥔 손은 또렷했다.
총은 녹슬어도, 펜은 기억을 남긴다.
전쟁은 끝났지만, 기록은 끝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