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석문섭 칼럼] ‘계약’의 파기, ‘언약’의 갱신

하나님은 우리와 계약이 아니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거래의 대상으로 여기며 계산기를 두드릴 때조차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언약적 사랑(Hesed)으로 대하십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사장님처럼 여길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기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본문에서. 사진은 ‘십계를 전달받은 모세’ 1659년 렘브란트 작

“내가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고 처음 것과 같은 돌판 둘을 다듬어 손에 들고 산에 오르매 여호와께서 그 총회 날에 산 위 불 가운데에서 너희에게 이르신 십계명을 처음과 같이 그 판에 쓰시고 그것을 내게 주시기로”(신명기 10:3-4)

모세가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땅에 던져 깨뜨렸을 때 사실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는 끝났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 대신 금송아지를 선택했고 하나님께 등을 돌렸습니다. 스스로 계약서를 찢었습니다. 계약을 먼저 파기한 쪽은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새로운 돌판에 다시 계명을 새겨 주십니다. 일반적으로 계약 파기 후 재계약을 맺을 때 훨씬 까다로운 조건이나 담보가 붙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전과 같은 말씀, 같은 계명을 주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계약(Contract)’과 ‘언약(Covenant)’의 결정적인 차이를 발견합니다. 계약은 고용 계약이나 임대차 계약처럼 쌍방의 이익과 조건이 부합할 때만 유효합니다. 한쪽이라도 계약을 어기면 그 효력은 즉시 소멸됩니다. 그러나 언약(Covenant)은 다릅니다. 언약은 한쪽이 약속을 어겨도 다른 한쪽이 그 관계를 지키기로 결단할 때 유지되는 관계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언약에 가장 가까운 모형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실패했다고 해서 부모 되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계약은 ‘서로의 쓸모’에 바탕을 둔다면, 언약은 ‘서로의 존재’를 바탕으로 합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계약적 관계 속에서 지치고 소진됩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쓸모’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수 하나에 계약이 파기되고 그동안 쌓아왔던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질지 모른다는 긴장에 영혼이 매마릅니다. 이 계산적인 계약 관계 속에서 우리는 오직 ‘유용성’으로 평가받습니다. 주고받는 것(give and take)의 균형이 깨어지면 관계도 깨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언약 관계가 단단한 사람은 계약 관계의 압박 속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소진되지 않습니다. 언약 관계라는 안전지대 안에서 존재 자체로 용납되며 무한한 공급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계약이 아니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거래의 대상으로 여기며 계산기를 두드릴 때조차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언약적 사랑(Hesed)으로 대하십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사장님처럼 여길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기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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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묵상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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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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