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년 전인 2017년 2월, 필자는 가족여행으로 일본 오키나와(Okinawa)를 찾았다. 계기는 브래들리 윌콕스(B.J. Willcox), 크레이그 윌콕스(D.C. Willcox), 마코토 스즈키(M. Suzuki) 세 학자가 2001년 공동 집필한 <오키나와 프로그램(The Okinawa Program)>이었다. 이 책은 세계 최고 수준의 호적 자료를 바탕으로 오키나와 주민들의 장수 요인을 25년간 추적한 연구 결과를 담고 있다.
책에 따르면 오키나와는 130만 인구 중 100세 이상 노인이 400명 이상 거주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심장병 발병률은 미국의 5분의 1 수준이라는 분석도 포함돼 있다. 저자들은 오키나와 장수 비결을 영양, 운동, 정신(스트레스 관리) 등 세 가지 영역으로 설명한다. 영양은 연료, 운동은 윤활유, 정신은 운전 습관에 비유된다.
필자는 여행 중 오키나와 북부의 오기미(Ōgimi) 마을을 방문했다. 오기미는 세계적인 장수촌으로 알려진 지역으로, 필자는 2월 23일 58번 해안도로변에 세워진 ‘장수촌 기념비’를 확인하고 사진을 남겼다. 기념비에는 “80세는 어린아이이며, 90세에 데리러 오면 100세까지 기다리라고 돌려보내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 다만 이는 책에 소개된 문구와는 일부 차이가 있었으며, 필자는 일본어 전문 번역사의 도움으로 기념비 내용을 따로 번역했다.
오기미 마을은 17개 행정구로 구성돼 있으며 촌장과 부촌장, 교육위원회 등이 있다. 2011년 통계 기준 인구는 3386명으로, 80~89세 335명, 90~99세 143명, 100세 이상 13명(남 1명, 여 12명)으로 집계돼 있었다.
오키나와 장수 노인들은 전통 식생활을 장수 비결로 꼽는다.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한 녹황색 채소와 해조류를 많이 먹고, 돼지고기와 두부 등 양질의 단백질을 섭취하는 식이다. 돼지고기는 삶은 뒤 채소, 해초, 콩 등을 넣고 최소한의 양념으로 조리한다. 오키나와 대표 요리로는 돼지고기 삼겹살을 활용한 ‘라후테’가 알려져 있다.
해조류 ‘모즈쿠’는 식이섬유와 미네랄, 아미노산이 풍부한 식품으로, 오키나와 식생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오기미 마을은 노인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의료, 건강, 복지, 간병 서비스 등을 포괄적으로 제공하는 지역 계획도 추진해 왔다.
오키나와에서는 ‘하라하치부(腹八分)’라는 표현이 널리 쓰인다. 포만감의 80% 정도에서 식사를 멈춘다는 의미다. 장수 노인들의 하루 평균 칼로리 섭취량은 남성 1400kcal, 여성 1100kcal 수준으로 서양권 평균(약 2400kcal)의 절반 수준이라는 분석도 있다. 소식은 노화 조절법 가운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오키나와의 건강지표는 2000년대 들어 급격히 악화됐다. 질병률, 사망률, 비만율이 일본 평균을 웃돌았고, 2020년 일본 후생노동성 발표에서는 오키나와 남성 평균수명이 47개 광역자치단체 중 43위로 추락했다. 여성 평균수명도 87.88세로 16위로 떨어졌다.
2021년 오키나와 남성 비만율은 41.6%로 일본 최고 수준이었으며, 여성 비만율도 24.8%로 전국 평균(22.3%)보다 높았다. 2024년 후생노동성 조사에서는 오키나와 주민의 유소견율도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게 나타났다. 콜레스테롤 이상소견 비율은 39.9%로 전국 평균(31.2%)을 웃돌았고, 혈압 이상소견도 25.4%로 전국 평균(18.4%)보다 높았다.
전문가들은 오키나와가 20여 년 만에 ‘장수촌’에서 ‘단명촌’으로 불리게 된 배경으로 식습관의 서구화, 운동량 감소를 꼽는다. 의료 접근성 문제도 지적된다. 오키나와는 160여 개 섬으로 이뤄져 있으나 사람이 사는 섬은 40여 곳이며, 의사가 상주하는 섬은 절반 정도다. 약 1600명이 거주하는 요나구니 섬은 상주 의사를 구하지 못해 오는 4월 진료소를 폐쇄할 예정이다.
필자는 이 사례가 한국에도 시사점을 준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도 전남 구례·곡성·순창·담양 일대 ‘구곡순담’ 지역이 장수마을로 불렸지만 최근 의료 접근성이 낮아지며 건강지표가 중하위권으로 밀려났다는 분석이 있다. 주민들의 신체 활동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시설 부족 역시 지표 하락 요인으로 꼽힌다.
장수촌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생활습관뿐 아니라 의료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 지자체는 적절한 의료 환경 조성과 예방 중심의 건강 인프라 확충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