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교육

[소학섭의 고려인청소년⑯]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꿈터를 짓다(1)

2022년 7월 캐리비안베이에서 실시한 현장체험 학습엔 70명이 넘는 학생들이 참여했다.

웃음 잃었던 아이들, 교실이 집이 되기까지

문득, 처음 입학생을 받았던 시절이 떠오른다.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의 문을 처음 두드리던 아이들의 얼굴에는 긴장과 경직이 짙게 묻어 있었다. 두리번거리는 눈빛, 굳게 다문 입술, 말보다 먼저 물러서는 몸짓. 그 조심스러움은 아이들이 지나온 시간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대한민국’이라는 할아버지의 나라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건너야 하는 현실은 결코 달콤하지 않았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아시안’으로 차별을 경험했어도 말은 통했기에 생활의 기본은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숨 돌릴 틈 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아이들은 적응의 속도를 맞추기도 전에 뒤처지기 시작했다.

5평 넓이의 교실에 13명이 수업을 받고 있다. 콩나물시루 교실이 따로 없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여기에 속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매일같이 마음을 두드리는 일이었다. 한 달, 두 달이 지나며 자신감은 흔들렸고, 정체성은 희미해졌다. 결국 집 안에서 시간을 흘려보내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밖으로 나가면 비교와 눈치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의 유일한 친구는 핸드폰과 게임뿐이었다. 삶의 속도에 발을 들이기 어려워질수록 아이들의 시선은 점점 아래로 향했다.

그러던 어느 날, 논 한가운데 서 있는 교회 지붕 위의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학교 시설로 개조한 공간, 그리고 주변의 익숙한 풍경은 고려인 청소년들에게 안도감을 주는 듯했다. 자신들이 나고 자란 곳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었을까. 낯선 땅에서 아이들이 숨을 고를 수 있는 풍경 하나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그때 조금 알 것 같았다.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당시 안성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시간이 흐르며 아이들은 이곳에서 조금씩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작게 웃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 크게 웃었고, 짧은 인사는 긴 이야기로 바뀌었다. 또래처럼 수다를 떨고 장난을 치며 웃음을 터뜨리는 공간.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는 그들에게 정서적인 고향이자 집이 되었다. 단순히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다시 사람답게 숨 쉬는 자리였다.

하지만 문제는 곧 드러났다. 입학생 수가 제한 없이 늘어나 어느새 70명을 넘겼고, 학교 운영은 임계점에 다다랐다. 교실은 늘 만원이었고, 복도는 쉬지 않고 붐볐다. 남녀 화장실이 하나씩뿐이라 쉬는 시간마다 장날처럼 북적였다. 반별로 쉬는 시간을 나누고 동선을 조정해 보았지만, 구조적 한계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화장실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들.

점심시간도 마찬가지였다. 급식을 받는 데만 15분 이상이 걸렸고, 급식실이 없어 각 반으로 음식을 옮겨 먹어야 했다. 좁은 주방에서의 설거지는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아이들이 늘어날수록 나의 체력은 고갈됐고, 하루의 운영은 ‘버티는 일’에 가까워졌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밥을 지었다. 누군가에게 한 끼 식사가 그날의 유일한 안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새벽 기도 속에서 질문은 점점 또렷해졌다. 그리고 마음 한가운데로 응답이 내려왔다. “건축을 해야 한다.” 응답은 설렘과 함께 두려움도 데려왔다. 교회 개척과 건축의 기억이 선명했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은 특히 아내에게 더 무거운 현실이었다.

그러던 중, 건축과 인테리어를 하는 집사님의 조언이 전환점이 됐다. 복층 리모델링이라는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아내는 조용히 말했다. “이 좁은 곳에 또 이것저것 구겨 넣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 말 뒤에,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그러면 건축을 하자.”

며칠 뒤, 아내는 말없이 2천만 원을 이체해 주었다. “당신 건축 물 붓기 힘 받으라고, 내가 먼저 물 붓기 시작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늘 앞이 아니라 뒤에서 더 무거운 짐을 들어 온 사람. 그 믿음 위에서, 나는 비로소 건축이라는 꿈을 계획이 아니라 순종으로 옮길 수 있었다. 이제, 꿈터를 짓는 여정이 시작됐다. (계속)

소학섭

(사)청소년미래연구 이사장,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이사장 겸 교장, 다문화전문가 2급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본 광고는 Google 애드센스 자동 게재 광고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합니다.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