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칼럼

[석문섭 칼럼] 진정 ‘큰 사람’이 되는 길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진정 ‘큰 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지극히 크신 분으로 내 안을 가득 채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이라는 가장 위대한 대우를 받았고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 주시는 하나님의 극진한 대접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사람의 작은 인정에 연연할 까닭이 없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벌써 배가 부른데 무엇이 더 고플까요? 설마 디저트 배는 따로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요? 사람의 달콤한 인정을 탐하다가 영혼에 당뇨가 올 수 있습니다.-본문에서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하니” (여호수아 17:14)

결과가 내키지 않아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겸허히 인정하는 것 그것이 제비뽑기의 본질입니다. 이스라엘 각 지파는 하나님을 믿고 기꺼이 제비를 뽑았습니다. 하지만 인간인 이상 다들 내심 원했던 땅이 있었을 것이고 피하고 싶었던 척박한 땅도 있었을 것입니다.

요셉 지파는 막상 제비를 뽑고 나니 그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지파 규모에 비해 배정받은 영토가 너무 작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업을 분배받지 못한 레위 지파가 들었다면 배가 불러도 한참 불렀다고 할 소리입니다.

가나안 땅은 전적인 은혜로 주어진 것이지 그들 편에서 요구할 수 있는 마땅한 권리 같은 것은 애당초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셉 자손은 마치 당연한 권리인 듯 더 많은 땅을 요구했습니다. 자기들이 인구도 가장 많기도 하고 이집트에서 했던 맏아들 노릇의 공로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셉 지파만의 이야기일까요? “나를 어떻게 이런 식으로 대접할 수 있느냐?” 이 시대 교회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내면에서 익숙하게 들리는 소리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늘 불평과 불만, 억울함에 시달리는 것은 스스로를 ‘크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왜 스스로를 크다고 여길까요? 속이 좁기 때문입니다. 왜 대접받고 싶을까요? 내면이 빈곤하기 때문입니다. 진짜 큰 사람은 대우가 다소 부실해도 그러려니 합니다. 타인의 대접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이미 품이 넉넉하고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독점할 수 있는 특권이라도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과 잘 나눕니다. 내가 취할 수 있는 영광도 함께하는 이들에게 돌릴 줄 압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길 줄 아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진정 ‘큰 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지극히 크신 분으로 내 안을 가득 채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이라는 가장 위대한 대우를 받았고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 주시는 하나님의 극진한 대접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사람의 작은 인정에 연연할 까닭이 없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벌써 배가 부른데 무엇이 더 고플까요? 설마 디저트 배는 따로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요? 사람의 달콤한 인정을 탐하다가 영혼에 당뇨가 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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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묵상 2권
<서툰 인생, 잠깐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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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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