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진짜 은혜는 연출이 필요 없습니다”

제임스 티소(James Tissot)의 ‘요셉과 야곱의 해후'(Joseph Meets Jacob)

*잠깐묵상 | 창세기 46장

“요셉이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의 목을 어긋맞춰 안고 얼마 동안 울매”(창 46:29)

22년 만의 부자 상봉이라는 극적인 장면치고는 서술이 너무 건조합니다.

만약 현대의 영화감독이 이 장면을 연출했다면 어땠을까요? 클라이맥스 이전에 엄청난 빌드업, 감동적인 배경음악, 인물의 세심한 감정선을 놓치지 않기 위한 카메라 워크, 재회의 감격을 더욱 배가시켜줄 지난날의 회상 신 등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한 다양한 기법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서술은 놀라울 만큼 단조롭습니다. 그저 “목을 어긋맞춰 안고 얼마 동안 울었다”는 사실만을 덤덤하게 기록할 뿐입니다. 성경은 의도적으로 배경음악을 끕니다. 이것은 현대 대중문화가 관객이 무엇을 느껴야 할지 다양한 장치를 통해 지시하는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독자로부터 특정 감정이나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치밀한 설계가 전혀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어쩌면 드라마나 영화에 익숙한 대중들은 아마 이 장면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보통 이야기의 절정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곤 합니다. 주인공이 승리하고, 기적이 일어나고, 갈등이 해소되는 그 순간에 조명이 집중됩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외치는 데 익숙합니다. 하지만 요셉과 야곱이 부둥켜안고 우는 그 순간, 성경은 일부러 모든 효과를 뺍니다. 요셉과 야곱의 재회 장면에서 성경은 구구절절한 감정을 서술하는 대신 커다란 여백을 일부러 남겨두는 것 같습니다.

만약 우리가 성경 이야기의 극적인 부분에서만 하나님을 느낀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 중 9할은 놓치고 있는 셈입니다. 하나님은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시간, 누구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그런 곳에서도 일하시는 분입니다. 제3자는 알기 힘든, 오직 당사자만 아는 그 순간들. 성경은 그 소중한 순간들이 클라이맥스의 배경으로만 밀려나길 바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문학적이고 영화적인 조명이 아니라 성령의 조명하심 아래 성경을 살펴보면 모든 행간에 밀도 높은 하나님의 열심이 담겨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일상도 동일하게 비추십니다. 성령의 조명하심 아래에서는 평범하고 건조한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은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심이 보입니다.

진짜 은혜는 연출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요셉과 야곱의 재회가 그토록 짧고 절제된 문장으로 기록된 이유는 이미 하나님이 그들 삶의 긴 여정 속에서 충분히 오래, 충분히 깊게 말씀해 오셨기 때문이 아닐까요?

잠깐묵상 유튜브로 듣기
https://youtu.be/GGqcIk-GXws?si=x1PLxJo0liN2RcC4

잠깐묵상 두 번째 이야기
<서툰 인생, 잠깐묵상>
https://youtu.be/YJQY2bnwjAE?si=3s5Q9NCt1mlnK6A8

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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