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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만 칼럼] 은행은 누구의 돈으로,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창설 초기 한국은행
[아시아엔=김기만 바른언론실천연대 대표, 전 동아일보 파리특파원·노조위원장, 전 청와대 춘추관장]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9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업무보고에서 ‘금융지주 지배구조 문제’를 거론하며 “가만 놔두니 부패한 이너서클이 생겨 멋대로 소수가 돌아가며 지배권을 행사한다”며 “회장 했다가 은행장 했다가 왔다 갔다 하면서 10년, 20년씩 하는 모양”이라고 지적했다는 보도를 접하는 순간, 필자는 “올 것, 아니 꼭 와야 할 것이 왔다”고 외쳤다. 이 대통령은 “이런 문제에 대한 대책이 있느냐”며 “그냥 방치할 일이 아니다”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너서클이란 특정 그룹의 내부 핵심 권력집단, 즉 ‘핵심 집단’이나 ‘핵심층’을 뜻한다.

금융지주 회장제의 탄생과 비대화
은행에 회장직이 처음 생긴 것은 1990년대 말 소수의 은행에서였다. 은행들이 다른 연관 산업으로의 진출을 늘리면서 계열사가 증가하자 금융지주로 전환해야 했고, 금융자유화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명분이 맞물리면서 점진적으로 회장제가 도입됐다. 2000년대에는 대부분의 금융지주사들이 회장 중심 체제로 안착했다.

그런데 이제 이 금융지주의 회장들이 커도 너무 커졌다. 가장 큰 문제는 은행 최고경영자(CEO) 선임 과정에서 최고경영자가 사실상 ‘셀프 연임’을 하고, 이를 견제해야 할 이사회는 거수기 역할에 그치는 관행이 굳어졌다는 지적이다. 그러다 보니 금융지주 체제 전환 이후 회장의 연임은 관행처럼 자리 잡았고, 일부 금융지주에서는 3연임 사례까지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군대의 전투 용어가 난무한다. 일단 회장이 되면 이사회를 자기 사람으로 채운다. 이를 “참호(塹壕, trench)를 판다”고 한다. 이후 경쟁 세력을 배제해 ‘진지(陣地, position)’를 구축한다. 이렇게 되면 장기집권의 길이 열린다. 내부 감시와 견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보신주의가 만연하고, 경쟁력이 훼손된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마침내 대통령이 이를 공개적으로 개탄하며 제도 개선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셀프 연임’과 깜깜이 인선, 무엇이 문제인가
특히 문제가 큰 것이 금융지주 회장 선임 과정의 ‘깜깜이 인선’ 논란이다. 이사회가 현 회장 연임을 확정했거나 연임이 유력한 일부 금융지주들은 외부 후보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러고도 연임 절차가 투명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보도에 따르면 우리금융지주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는 지난 2일 임종룡 현 회장, 정진완 은행장, 외부 후보 2명 등 4명을 차기 회장 압축 후보군(숏 리스트)으로 선정해 발표했지만, 외부 후보 2명의 신상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후보 선임 과정에서는 역량, 경영목표, 비전, 도덕성 등에 대한 공정하고 충분한 검증이 필수적인데, 이 같은 방식은 검증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후보자 본인의 요청이라는 설명이 뒤따르지만, 공적 책임이 큰 금융지주 회장 선임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현 우리은행 경영진이 차기 회장 후보군에 포함된 것 자체가 적절한지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경영진의 연임 여부를 판단할 때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는 경영 성적표다. 공개된 사업보고서와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하면, 최근 몇 년간 우리금융의 자산 규모와 수익성 지표가 경쟁 금융지주들과 비교해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전임 회장 재임 말기의 경영 성과 역시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회장 후보 선임에서 경영 전문성 못지않게 중시되는 요소는 건전성과 공익성이다. 우리금융은 전임 회장 시절 불거진 특정 불법대출 사건으로 시장의 신뢰가 크게 흔들렸고, 이 사건과 관련해 내부통제 책임론이 제기돼 왔다. 금융당국과 국회 논의 과정에서 문제 된 대규모 부당대출 가운데 상당 부분이 현 회장 재임 기간에 발생했다는 지적도 있었으며, 이에 대해 당시 금융감독원장은 경영진의 책임을 언급한 바 있다. 임종룡 회장 역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잘못이 있다면 책임지겠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금융지주 내부통제 실패의 최종 책임은 최고경영자가 진다는 원칙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현 회장이 연임에 나선 것을 두고 책임 회피라는 비판이 뒤따르는 이유다.

우리금융·신한·BNK 사례로 본 연임 논란의 현실
이처럼 금융지주 회장들의 장기 연임 관행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이재명 정부에서 선임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지주 회장단 간담회에 앞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과도한 연임 욕심’과 ‘형식적 경쟁 후보’ 문제를 구체적으로 경고했다. 그러나 우리금융은 다음 날 곧바로 압축 후보군을 발표했고, 신한금융은 며칠 뒤 현 회장을 차기 회장 후보로 확정했다. 이쯤 되면 금융당국의 문제 제기를 정면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지주 회장이 재벌그룹 회장보다 더 ‘황제’처럼 군다는 말까지 나오는 배경이다.

BNK금융지주 역시 회장 선임 절차를 둘러싸고 논란에 휩싸여 있다. 후보 접수 기간이 지나치게 짧아 외부 응모를 사실상 차단했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금융감독원은 국정감사와 공개 발언을 통해 선임 절차의 특이점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재벌 총수도 아닌 금융지주 회장들이 왜 이런 비판을 자초하는지 묻게 된다.

지배구조 개혁과 ‘황제경영’의 충돌
정부와 여당이 재벌의 후진적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상법 개정에 나서자, 국내 증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는 우리나라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크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금융지주 회장들은 이런 흐름과 동떨어진 ‘황제경영’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수십 개 계열사의 대표와 임원 인사를 좌우하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책임은 분명히 지지 않는 구조라는 비판이다. 연봉 30억 원 안팎의 보수를 받으며 연임하면 6년, 3연임이면 9년까지 자리를 지키는 현실은 소유 분산 기업의 전문경영인 모델과 어울리지 않는다. 금융의 이런 후진적 지배구조를 방치한다면 정부의 기업 지배구조 개선 노력은 반쪽에 그칠 수밖에 없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지 않는 이유다.

금융감독원은 2023년 12월 ‘금융지주·은행 지배구조 모범 관행’을 발표했고, 올해 5월에는 회장 장기 연임 검증 절차 강화 등을 포함한 보완 과제를 제시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여전히 제도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크다. 특정 지배주주가 없는 소유 분산 금융회사는 민영 기업이지만, 공공성은 그 어떤 기업보다 강하다. 공정하고 투명한 거버넌스 확립이 필수적이다. 이사회의 독립성과 시장 신뢰를 동시에 확보할 실질적인 개선책이 필요하다.

금감원은 지배구조 개선 태스크포스(TF)를 통해 관련 입법 과제를 내년 1월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사후약방문이 되지 않도록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지난 정부에서도 금융당국이 몇몇 회장의 연임을 사실상 저지한 사례가 있었지만, 그 자리를 정치권이나 관료 출신 인사로 채우면서 오히려 비판을 키운 전례도 있다. 그런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혁파가 필요하지, 내쫓고 내 사람을 심는 방식은 해법이 될 수 없다.

그래서 필자는 차제에 금융지주 회장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무조건 옛날로 돌아가자는 건 아니다 그러나 2000년대 이전까지 은행들은 회장 없이 은행장 중심 체제로도 운영돼 왔다. 물론 은행 규모가 커지고 업무가 복잡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금융지주 회장직이 결국 은행장 출신이나 고위 관료에게 초고액 연봉과 장기 집권의 기회를 제공하는 자리로 변질됐다는 비판 또한 일리가 있다. 특히 서민의 눈에는 곱게 보일 리 없다.

고액 연봉과 장기 집권…구조 바꾸지 않으면 답이 없다
은행은 대출 이자로 수익을 올리는 구조다. 2024년 국내 은행권의 이자수익과 순이익이 역대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이익이 늘자 4대 은행은 직원들에게 수백 퍼센트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은행 수신의 상당 부분은 개인(서민) 예금에 기반하고 있음에도, 대출 금리 인하에는 소극적이라는 불만이 크다. 그래서 은행은 남의 돈으로 이익을 내면서 내부에서만 잔치를 벌이는 집단이라는 냉소를 듣는다.

“비가 오면 우산을 빼앗고, 날이 맑으면 우산을 빌려주는 곳”이라는 은행에 대한 오래된 비유가 여전히 회자되는 이유다. “은행은 돈 먹는 하마”라는 표현도 같은 맥락이다.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을 지낸 뒤 2023년 3월부터 우리금융 회장을 맡고 있다. 그가 연임할 경우 은행 회장만 세 번째가 되며, 기간으로는 9년에 이른다. 여기에 금융위원장 재임까지 포함하면 공직 만년의 상당 부분을 금융권 최고 권력의 자리에 머무는 셈이다. 금융권에서는 윤종규 전 KB금융 회장을 모범 사례로 거론한다. 연임 후 성과를 남기고 물러났다는 평가 때문이다.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 역시 고졸 행원 출신으로 은행장과 회장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러나 이런 개인적 서사가 장기 연임 논란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서민들이 보기에 연봉 30억 원을 받는 금융지주 회장도 봉급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봉급쟁이가 황제처럼 군다는 비판을 받는가. 금융당국은 왜 이를 제어하지 못하는가. 이를 두고 ‘신관치’라는 비난이 나오기도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관치가 아니라 불투명한 연임 관행을 제도적으로 바로잡자는 데 있다.

은행의 긍정적 역할은 분명하다. 자금 중개, 신용 창출, 결제 시스템 운영을 통해 경제 성장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서민의 작은 돈까지 모아 영업을 하면서 최고경영자는 고액 연봉과 장기 집권을 누리고, 그 과정에서 편법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면 이는 바로잡아야 할 구조적 문제다. 금융지주 회장제 폐지를 포함한 근본적인 개혁 논의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2001년 영화 <친구>의 대사를 빌린다.
“고마 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김기만

바른언론실천연대 대표, 김대중정치학교 대외협력본부장,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노조위원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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