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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헌도서관’…인향만리, 전북대에 남은 산민 한승헌 변호사의 삶의 향기

2025년 11월 11일 개관한 전북대 안 한승헌도서관.

산민(山民) 한승헌 변호사(1934-2022)는 김대중 대통령(1924년 생)보다 정확히 열 살이 적다. 김대중 대통령이 권력에 의해 고통받으며 법정에 설 때마다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변론을 맡았던 한 변호사지만 실은 DJ의 말을 무조건, 혹은 쉽게만 듣는 편은 아니었다. 특히 정계 입문과 관련해서 그러했다. DJ가 국회의원을 해보라고 하면 아예 “그러면 앞으로 후광(後廣, DJ 아호)선생 변론도 안할 것”이라고 해 DJ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DJ가 특사를 보내 “그럼 고향을 위해 전북지사를 해보라”고 하자 그는 “전북지사(支社)보다는 중앙본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조크로 돌려보냈다. 바로 물러설 DJ가 아니어서 두 번째 특사를 보내 또 전북지사를 권하자 이번에는 “전북지사보다는 해외지사를 하고 싶다”는 말로 고사의 뜻을 관철했다.

그런 한 변호사가 감사원장 직을 수락할 수 밖에 없게 될 때의 불꽃튀는 고단위 유머는 유명하다. 한 변호사를 불러들인 DJ는 이렇게 선공(先攻)한다. “한 변, 교회 다니지요.” “예, 엉터리 신자지만 다니긴 합니다.” “그럼 빌립보서 4장 4절의 말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 알지요?” “예, 들어봤습니다만…” “됐어요. 감사원장 하세요. 그럼 매일 감사하게 될 것 아닙니까?”

1998년 2월말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감사원장 임명장을 받는 한승헌 변호사

훗날 한승헌 변호사는 “이 날의 DJ 공격에는 “뭐라 답 한 마디 못하고 완패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렇게 1998년 8월 감사원장에 취임한 그는 대법원장, 중앙선관위원장 등의 연령 제한이 70살인데 비해 감사원장은 65살인 것을 알고 정부와 국회 관계자들을 설득해 70살로 고친다. 주위에서는 당시 64살이던 그가 당연히 4년의 임기를 다 할 것으로 봤다. 그러나 그는 “연령 제한을 바꾸되 당시 원장은 이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조항을 부칙에 넣고 자신의 연령이 만 65살이 되던 1999년 8월에 그야말로 표표히 감사원장 직을 끝낸다. 재임 딱 1년 1개월 만이었다. 한승헌은 그런 분이다. 그의 인품이나 공인(公人)으로서의 철저함에 대해 더 이상 얘기하는 것은 사족일 뿐이다.

2022년 작고한 한승헌 변호사의 모교인 전북대에 ‘한승헌도서관’이 작년 가을 개관했다.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옆에 들어선 114평 아름다운 한옥 건물 도서관은 크고 웅장하면서 건축미 측면에서도 아름다웠다. 경복궁 근정전이 200평인 것을 생각하면 이 도서관의 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전북대가 배출한 최고의 인물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한승헌 변호사가 전북대로 진학한 것과 관련해 필자가 겪은 에피소드가 있다. 서울대 출신 신문사 후배가 어느 날 물어왔다. “김 선배, 한승헌 선생님이 당연히 서울법대 졸업생일 줄 알았는데, 전북대 정치학과더라고요.”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후배는 필자로부터 핀잔을 들어야 했다. “이 친구야, 이리 와봐. 사람이 절대 기르면 안되는 개가 두 마리 있어. ‘편견’과 ‘선입견’이야. 넌 둘 다 기르고 있어.” 그러면서 필자는 한승헌 변호사가 전주고 30회 수석졸업자였다는 것과 모친께서 아들이 가까운 곳에서 대학에 다니기를 원하셔서 서울대를 포기하고 전북대를 택했다는 것을 말해줬다. 하기야 6.25가 채 끝나지도 않았던 1953년 학번이니 그 때는 전북대나 서울대나 무슨 차이가 있었을 것인가. 1947년 개교한 전북대에 있어 개교 6년 후인 1953년에 입학한 한승헌 변호사의 존재는 컸을 것이 분명하다.

작년 한승헌도서관 개관식은 젊은이들이 빼빼로 데이라 부르는 11월 11일 오전 11시에 있었다. ‘111111’이었다.

‘한승헌도서관’은 이 나라 법조계와 민주화운동의 거목인 고(故) 한승헌 변호사의 뜻을 기리고 그가 남긴 민주주의, 정의, 인권, 양심의 정신을 미래 세대와 지역사회가 함께 계승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시대정신을 배우고 토론하며 지역과 대학이 함께 성장하는 열린 인문공간으로 조성됐다는 의미도 컸다. 개관 기념강연에서는 김선수 전 대법관이 ‘한승헌 변호사와 함께한 사법개혁’을, 유시춘 EBS 이사장(전 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이 ‘한승헌 변호사와 함께 한 인권운동’을 주제로 강연했다.

도서관 개관은 고 한승헌 변호사 유가족이 전북대에 발전기금 1억원을 기부하면서 추진됐다. 여기에 국립대학 육성사업 등의 예산을 더해 총 6억 2천만원 규모로 조성됐다. ‘한승헌도서관’은 고인이 남긴 기록과 정신을 모교에 아로새기는 상징적 공간으로 기획됐다. 연면적 378㎡(약 114평) 규모로 100~150명이 학습과 토론,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열린 복합공간으로 운영된다.

양오봉 전북대 총장과 김관영 전북지사는 축사를 통해 한승헌 도서관이 우리 사회가 잊지 말아야 할 가치들을 품은 공간으로 민주주의와 정의, 인권의 정신을 후대에 전하는 산교육의 장이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양 총장은 “오늘은 전북인의 자긍심을 일으켜 주신 한 변호사님이 재탄생하는 날”이라며 “이 공간은 정의와 인권과 양심, 배움의 정신을 살리고 올곧은 생각과 따뜻한 마음이 공존하는 열린 배움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신경림 시인이 한 변호사님에 대해 ‘이 땅에서 폭력을 몰아내겠다’고 외치며 연대했던 젊은이들을 피 철철 흘리며 변호했던 분”이라고 말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한승헌 변호사의 유머기행 <속 산민객담>

김관영 지사는 “평생 정의를 껴안고 사신 한 변호사님은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분”이라며 “이 자리는 앞으로 제 2, 제 3의 한승헌이 나올 수 있는 씨앗을 뿌리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가 변호사님을 특별히 존경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가장 힘들고 괴롭고 엄혹할 때에도 이를 이겨내는 빼어난 유머를 구사하셨기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유가족을 대표한 차남 규무 씨(전 대학교수)는 “2025년 11월 11일 11시를 잊지 않겠다”며 “한승헌도서관이 약자들을 위한 법조인 양성의 요람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늘을 한승헌 정신의 생일로 알겠다”며 “고인의 정신이 젊은 세대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쉬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고인의 미망인 김송자 여사(92)는 “당신이 작고한 뒤부터 도서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며 “고인의 모교에서 이렇게 해주니 이제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이제 저승에 가서 한 변호사를 봐도 떳떳하게 자랑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여 듣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한승헌 변호사는 전북 진안 출생으로, 전북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통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사건, 김대중 전 대통령 사건 등 수많은 시국사건을 맡아 약자와 정의를 위한 변론에 평생을 바쳤다. 감사원장과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서민과 약자의 변호사’로 불렸다. 2025년 10월에는 그 뜻을 기리고자 ‘산민포럼’이 발족되기도 했다.

한편 이날 한승헌도서관 개관식에는 한 변호사와 깊은 인연을 맺은 일본인 진객(珍客) 3 명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일본평론사 쿠시자키 히로시(皐崎 浩, 69) 대표와 다케다 아야(武田 彩) 편집장, 그리고 판례시보사(判例時報社) 소고 테지마(手島祥午) 전무다.

쿠시자키 대표는 “2002년 한 변호사님이 사법개혁추진위원장으로 일본에 오셨을 때 처음 뵈었고, 그 이후 아버님처럼 생각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한 변호사께서 만나자마자 ‘아니, 어떻게 일본말을 그리 잘 해요?’라는 조크를 해주셔서 마음이 녹아내렸다”고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그는 “변호사님 초대로 한국을 방문해 한국의 국민참여재판과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을 공부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한승헌 변호사 추모행사는 오는 4월 20일 4주기부터 ‘산민 한승헌기념회(이사장 윤석정 전북일보 사장)’ 과 전북대 공동 주관으로 고인의 모교인 전북대에서 열린다. 필자는 한승헌 변호사님에 관해 여러 번 글을 썼다. 2022년 4월 20일 고인이 별세했을 때, 추모식 때, 발인날에 각각 한 편의 글을 썼다.

가까이는 지난해 10월 1일 ‘산민 포럼’ 출범식 때는 ‘산민 포럼 발족/참 어른의 品格/평생 몸무게 55kg을 넘은 적이 없었던 거인을 우러른다’는 제목의 글을 썼다. 또 10월 12일에는 ‘광기(狂氣)의 법정, 철권(鐵拳) 군사독재를 유머로 이겨낸 고(故) 한승헌 변호사를 톺아본다’는 글을 쓴 바 있다. 그러니까 변호사님 별세 이후로만 벌써 여섯 번째 글을 쓰는 셈이다. 필자는 무산(無山)이라는 아호를 쓰고 있는데, 이 또한 한 변호사님이 주신 것이다. 무한의 대복(大福)이라 여긴다.

인향만리(人香萬里)요, 덕불고필유린(德不高必有隣, 덕이 높으면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이라고 했다. 파사현정(破邪顯正, 그릇된 언행을 버리고 올바름을 행함) 하되 항상 춘풍(춘풍)처럼 사람을 대했던 인간 한승헌의 향내가 갈수록 진해진다.

김기만

바른언론실천연대 대표, 김대중정치학교 대외협력본부장,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노조위원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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