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삼 대통령이 ‘유머’를 자꾸 ‘루머’라고 하더라고. 또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유니버스’ 대회라고 하고. 그래서 생각했지. 저건 발음 문제가 아니야. 서울대 철학과 청강생이라는 얘기가 맞는갑다….”
지난 2022년 4월 88세로 작고한 한승헌(韓勝憲) 변호사는 평생 47권의 다양한 저작을 남겼다. 법정(法庭) 관련한 책이 가장 많지만, 우리나라 저작권 권위자답게 그 방면의 책도 있고, 시집이 4권 있으며, 수필집도 여럿이다. <웃으면서 싸운다> <유머수첩> <산민(山民) 객담> 등 유머집도 4권 있다.
그는 유머가 삶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믿은 분이다. 그는 법조인에게 필요한 세 가지로 법지식, 양심, 그리고 유머를 들었다. “유머는 권력의 오만을 녹이는 해학이며, 웃음은 두려움을 이기는 자유의 언어다”라고 설파했다.

자, 그럼 韓辯의 유머 세상을 잠시 돌아보자. 극동방송 김장환 목사 얘기를 이렇게 전했다. “김 목사가 아들을 낳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라는 뜻에서 ‘순종(順從)’으로 이름 짓자고 부인에게 상의했습니다. 미국인인 아내는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 사이에 태어난 잡종인데, 어떻게 순종이라고 짓습니까?’”
DJ가 정권을 잡고, 지난날 감옥 출신(빵잽이) 정치인 등 100여 명을 청와대로 초대해 만찬을 했다. 韓辯의 건배사. “청와대와 감옥은 같은 점도 많고, 다른 점도 있습니다. 먼저 같은 점이란, 첫째, 담장이 높다 둘째, 경비가 삼엄하다 셋째, 어깨를 펼친 분과 움츠려 다니는 자들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정반대로 다른 게 있습니다. 감옥은 울고 들어가 웃고 나오는데, 청와대는 웃고 들어가 다들 울고 나온다는 점입니다!”
韓辯이 금강산 관광에 나서 큰 유람선을 탔다. 선장은 감사원장을 지낸 거물 승객에게 특별 배려로 배의 기관실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런데 거대한 유람선을 돌리는 엄청나게 큰 기관실은 냉각을 위해 어마어마한 에어컨을 가동 중이어서 매우 추웠다. 그때 韓辯이 말한다. “기관이란 어디나 춥군!” 정보부 지하실을 슬쩍 연상케 했던 것이다.
그 유람선에서 뷔페 식사를 하는데 그는 자꾸 국물을 마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공직(감사원장)을 그만두니 국물(?) 맛이 엄청 당기느만.”
韓 변호사님은 당신의 창작 유머에도 강했지만, 다른 사람의 유머를 전하면서 이를 당신의 결로 바꾸어 더 품격 있는 유머로 만드는 데도 일가견이 있었다. 이런 식이다. 어느 날 안철수씨와 만났는데, “중학교 때 공부를 못해 ‘수우미양가’ 중 ‘수’가 없었다”고 하더만. 그러면서 “그래도 이름에 ‘수’가 하나 있어서 항상 ‘수가 하나는 있다’고 위안했습니다”라고 하더라고. 그를 평소 높지 않게 평가했었는데, 그 유머감각 이후 다시 보이더라고.
韓辯의 유머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새타이어(satire, 현실의 부정적 현상이나 모순을 꼬집음)가 있다. “박정희와 나의 공통점이 딱 하나 있어요. 18번이 ‘아아, 으악새~’로 시작되는 ‘짝사랑’이라는 것이죠. 해직 교수, 감옥 다녀온 변호사 등이 모이는 내 모임 이름도 ‘으악새’입니다. 박정희와 18번도 같은데, 어쩌다 그는 ‘유신찬가의 탑싱어’가 되고 나는 ‘민주찬가의 탑싱어’가 됐을까요…”
다음 얘기 정도면 유머가 아니라 가슴이 서늘해지는 시국 비판이다. “언젠가 미국인들이 있는 자리에서 건배를 하게 됐는데 감기가 심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어요. ‘내 감기는 주한미군이다. 한 번 들어오면 나갈 줄 모른다.’ (폭소, 바로 수습이 필요하다) ‘그런데 나는 결코 반미주의자가 아닙니다. 나는 커피를 아메리카노만 마십니다.’”
장영달 의원 축하 자리에 갔습니다. 내가 후원회장이어서 장 의원이 자주 쓰는 “북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남에는 장영달 국방위원장”을 상기시킨 뒤 “소장 위에 중장, 중장 위에 대장, 대장 위에 병장이라고 했습니다.” 큰 박수가 나왔습니다. 그는 실제로 월남전에도 다녀온 병장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故 박원순 시장은 투박하고 담백한 사람이어서 아끼고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유머는 못했지요. 그런데 한 번은 잘하더라고요. “변호사님, 사람들이 저와 함께 식사하면 밥맛이 좋다고 합니다.” (왜?) “아, 시장이 반찬이라고…”
어떤 후배가 찾아와 진지하게 “어떻게 하면 좋은 주례사를 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묻더라고요. “지금까지 당신이 살아온 것과 반대로만 말하면 아마도 좋은 주례사가 될 거요”라고 답해줬습니다. 나도 그렇게 하니까요.
어떤 결혼식에 갔습니다. 목사의 주례사가 길어질까 걱정했으나 적절히 짧게 잘 끝냈습니다. 문제는 축가를 두 팀이 나서서 두 곡씩 하는 바람에 결혼식이 좀 길게 늘어졌다는 점입니다. 그때 목사가 말했습니다. “식순에 있는 찬송가는 생략하고 여러분 각자 댁에 가셔서 부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 목사는 분명히 유머를 아는 사람이리라. 속으로 “최고!”라고 칭찬해 줬습니다.(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