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2:20)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선교 여행 중 고작 3주 남짓 머물렀던 곳입니다. 스쳐지나갔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짧은 시간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 행간마다 성도들을 향한 애정과 친밀감, 그리고 사무치는 그리움이 절절히 배어있습니다. 겨우 3주 만에 어떻게 이런 깊은 신뢰 관계가 형성되었을까요?
흔히 우리는 관계의 깊이가 함께한 시간에 비례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세월을 함께 견디며 쌓은 신뢰와 친밀감은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절대적인 척도는 아닙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친숙해지기보다 그저 익숙해지기만 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함께 해서 서로 잘 아는 것 같은데 “정말 그 사람과 친밀한가?”라고 자문했을 때,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 어려운 관계도 있습니다. 그것은 친밀함이 아닌 정보의 누적일 뿐이고, 관계의 깊이가 아닌 익숙함의 두께일 뿐입니다. 심지어 가장 가까워야 할 부부 사이조차 친숙함 대신 건조한 익숙함만이 남기도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에는 바울의 애정 표현이 넘칩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 비교해 볼 때 이토록 감정이 풍부하고 격정적인 표현은 이례적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이 이 편지를 봤다면 상당히 서운할 만한 온도 차이입니다.
이 각별함이 어디서 비롯된 걸까요? 사실 바울은 누구를 만나든 어떤 교회에 머물든 언제나 진심이었고 전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바울의 진심과 전심이 늘 받아들여졌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여러 사람의 오해와 적개심을 견뎌가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이라고 속상하지 않았겠습니까? 데살로니가 교회가 바울에게 각별했던 이유는 그곳이 진심과 진심이 만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울의 말을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고 그의 투박하지만 진실한 사랑에 있는 그대로 반응했습니다.
떠올리기만 해도 힘이 나는 추억이 있습니다. 바울에게 데살로니가에서의 3주는 그런 추억이었습니다. 그 기억이 앞으로의 사역을 지속할 수 있는 크나큰 위로이자 힘이 되지 않았을까요?
모든 관계가 이와 같지는 않습니다. 진심을 다해도 외면당하는 순간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진심이 언제나 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통할 뿐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통했다는 건 진심이 변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진심이란 견디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진심만큼 견딥니다. 만약 바울이 수많은 의혹과 비난, 의심에 지쳐서 초심과 진심을 포기했다면 데살로니가에서의 3주를 만날 수 있었을까요?
잠깐묵상 유튜브로 듣기
https://youtu.be/Q6AcZ-s2btw?si=G5Cq3oxb1THjQyI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