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칼럼

베드로…이 상황에서 잠이 오다니

이탈리아 르네상스 거장 라파엘로가 1513-1514년경에 제작한 프레스코화로 옥에 갇힌 사도 베드로가 천사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석방되는 장면을 그렸다.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행 12:6-7)

이 정도면 베드로는 잠자는 게 은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당하기 전날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시던 그 옆에서도 잤습니다. 내일이면 자신의 사형이 집행될지도 모릅니다. 군인이 양옆에서 자신을 지키고 있고, 양손에는 쇠사슬이 매여 있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잠이 온다는 게 너무 신기하지 않습니까? 걱정과 불안과 염려에 몸서리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도 모자랄 판에 그는 세상 편하게 잠을 잡니다.

자고 있는 베드로를 주의 사자가 쳐서 깨웁니다. ‘치다'(πατάσσω), 이 단어는 ‘세게 때리다’, ‘강타하다’는 뜻입니다. 조그마한 자극에도 잠이 깨야 정상인 상황에서 그는 옆구리를 때리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자고 있었습니다. 설잠을 자고 있었던 게 아닙니다.

잠이란, 마음이 편해야 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격이 좋은 사람도 죽고 사는 문제 앞에서 낙천적일 수는 없습니다. 사람마다 성격이 각양각색이지만 죽음의 공포 앞에서는 평준화되고 맙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베드로가 편히 잠을 자고 있었다는 사실이 인상 깊습니다.

며칠 전에 야고보가 죽었습니다. 유대인의 환심을 사려는 헤롯의 칼날에 동료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예전부터 갈릴리에서 함께 배를 탔던 친구, 같이 예수님을 따랐던 동료입니다. 야고보를 죽인 헤롯이 다음 순번으로 지목한 사람이 베드로 자신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아마도 그 둘은 이미 죽음에 관하여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하루하루 오늘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각오로 서로의 신앙을 점검했을 것입니다. “먼저 가는 사람이 천국에서는 형님이다”라며 농담을 주고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베드로의 잠은 ‘나는 구출될 것이다’라는 확신의 잠이 아니었습니다. 천사의 구출을 기다리며 잠든 것이 아니라, 다음 날 천국 문 앞에서 나를 맞아주실 예수님 뵙기를 기다리며 청한 잠이 아니었을까요?

베드로는 천사가 자신을 깨우고, 손에 채워져 있던 쇠사슬이 벗겨진 것보다 더 큰 기적을 미리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죽음 앞에서의 의연함, 가장 불안해야 할 그 순간에 평안하다 못해 잠이 들어버린 것, 그것이 베드로가 감옥에서 경험한 최고의 기적이었습니다.

🎧잠깐묵상 유튜브로 듣기
https://youtu.be/L8Li_YKFMvk?si=NXz6SoiA64PGaKj2

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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