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아리마대 사람 ‘요셉’…더 좋은 것을 붙잡았을 뿐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예수'(El Descendimiento), 네덜란드 화가 로히에르 반 데르 베이덴 작품. 예수 오른쪽에서 다리를 잡고 있는 사람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요 19:38)

아리마대 사람 요셉, 그는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원으로서 사회적 지위와 부를 다 갖추었습니다.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였고,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성공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도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예수의 제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았던 제자였습니다. 두려웠을 것입니다. 정체가 들키는 순간, 자신이 평생 쌓아 올린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까 봐 무서웠을 것입니다.

그는 오랜 시간을 괴로워하지 않았을까요? 단 한 순간도 제자답게 살아본 적 없는 제자라는 사실에 스스로 한없이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부와 명예, 지위를 포기할 정도로 용기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그런 그가 빌라도 앞에서 예수의 시신을 요구합니다.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맹세했던 다른 제자들은 온데간데 없고, 자신의 정체가 들킬까봐 가슴 졸이며 살았던 요셉이 나선 것입니다. 수제자란 사람은 자기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며 꽁무니를 빼버린 상황입니다. 요셉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다른 제자도 아닌 그가 빌라도 앞에 나서게 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그를 다그치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요셉에게 십자가란, 이 부끄러운 제자를 끝까지 참아주시고 죽기까지 사랑하신 주님의 한없는 용납이었을 것입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요일 4:18)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그 사랑을 확인한 순간 그는 두려움을 넘어섭니다.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내어 달라”고 요구한 것, 이것은 결코 쉬운 요청이 아닙니다.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한 산헤드린 공회와 로마 권력을 동시에 등지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대단한 각오와 결단으로 그 자리에 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리라는 다짐을 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좋은 것을 붙들었을 뿐입니다. 가장 좋은 것을 붙잡느라, 평생을 손에 움켜쥐고 있던 것들이 떨어졌을 뿐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말입니다.

사랑이 차오르자 어느새 자기가 중요해지지 않았습니다. 인생에서 자기 자신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발견한 것입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그의 발걸음이 얼마나 가볍고 기뻤을까요?

잠깐묵상 유튜브 채널
https://youtu.be/EoOb1S3h7Z0?si=DD9OhkZj1OsM5pO3

<바쁜 하루, 잠깐묵상>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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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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