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한 12권 대하소설 ‘화산도(火山島)’의 작가 김석범(金石範, 본명 신양근)은 올해 100세다. 이 분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가 지난 9월 문학평론가인 숙명여대 권성우 교수가 한겨레신문에 쓴 칼럼을 읽고 그를 알게 됐다. 최근 한국어로 번역된 그의 소설집 <보름달 아래 붉은 바다>를 구해 읽어봤다. 2017년부터 2022년 사이에 발표된 ‘소거된 바다’ ‘땅의 통곡’ 등 세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모든 작품에 ‘작가 K’가 등장했고 작가 자신이 주인공인 자전적 소설이다. 그는 1946년 일본으로 밀항한 이후 42년 만인 1988년에야 조국을 방문한 처절한 유민(流民), 디아스포라(diaspora)다.

제주 출신으로 인생의 벼랑 끝에 섰던 일본 센다이(仙臺) 시절의 극한적 체험은 그에게 제주 4.3의 비극을 누구보다 먼저 천착한 첫 작품 ‘까마귀의 죽음'(1967년)을 쓰게 만든 동기가 된다. 작품집 이름인 <보름달 아래 붉은 바다>에서 작가는 한국전쟁 때 제주경찰서에 예비 검속으로 붙잡혔다가 1950년 여름 제주항 앞바다에서 비밀리에 수장된 사람들의 무참한 비극을 되짚는다. 기록의 부재로 진상규명이 되지 않은 은폐된 역사다. 작가는 절규한다. “50명씩 밧줄에 묶인 나체의 남녀 500명이 탄 1백톤(t)급 어선의 출항이 완전히 비밀이 될 수 있을까.” 현재 제주항 부근의 ‘주정공장 수용소 4.3역사관’은 4.3 당시 집단수용소였다고 작가는 뚜렷이 기억한다.
<보름달 아래 붉은 바다> 일본어판이 한국에 앞서 지난 2022년 출간됐을 때 김 작가는 “내가 죽고 나면 이 책이 가장 잘 팔릴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이 책 한국어판의 판매는 지지부진이라고 권성우 교수는 전한다. 더욱이 얘깃거리가 충분한 이 책에 대한 한국언론의 관심은 거의 없다. 참으로 쓸쓸한 일이다.
지난 9월 19일 열린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대산문화재단 주최)에서 유일한 생존작가인 김석범 문학 낭독 순서가 있었다. 이 문학제에는 올해 100살인 고(故) 김규동, 박용래, 어효선, 이오덕, 홍윤석님도 초대되었다. 그보다 전인 8월 27일에는 광운대 한울관에서 ‘김석범 탄신 100주년 문학, 학술포럼'(대산문화재단 주최)이 열렸다. 생존작가를 초대한 100살 기념 문학제는 처음이었다고 한다.
권 교수에 따르면 지난 10월 2일 만 100살을 맞은 노익장 김석범 작가는 놀랍게도 지난 해 두 편의 작품을 발표했고, 곧 새 단편소설이 문예지에 실릴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4.3사건을 주제로 한 ‘화산도(火山島)’를 1965-1997년 32년에 걸쳐 썼다. 100살에도 여전히 치열하게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김석범 작가에게 우리 사회의 좀더 따뜻한 시선과 관심이 주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2017년 ‘이호철 통일로문학상’을 받은 것 외에 변변한 문학상 하나 받은 게 없다.
96살 때에도 시집을 냈던 황금찬(黃錦燦) 시인은 2017년 99살에 별세했다. 이어 김남조(金南祚) 시인은 2023년 96살로 작고했다. 이제 고은(高銀) 시인이 92살, 나태주 시인은 90살로 100살에 가까운 작가가 없는 상황에서 김석범 작가는 우리 문단에 소중한 존재다. 100살 작가를 여러 방법으로 응원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