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정치사회

파월 군가, ‘조국의 이름’으로 부른 평화와 승리의 노래…황건·송영빈씨 ‘우리는 청룡이다’ 등 8편 분석

정지영 감독 안성기 주연 <하얀전쟁>

1965~1973년 사이 작사된 8편의 파월 군가를 텍스트 네트워크로 분석한 황건(국군수도병원)·송영빈(이화여대) 연구팀이 분석 결과 ‘평화·조국·자유·이름·월남·이기고(승리)’가 핵심 단어로, 군가는 단순한 노래를 넘어 국가 이념과 병사들의 정신전력을 결합한 매개체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군가는 병영을 넘어 국민가요로 확산되며 “이기고 돌아오라”는 집단적 염원을 상징했으며, 냉전 이데올로기와 국가주의, 남성적 영웅주의의 코드가 함께 작동했습니다. 아시아엔은 이들의 연구를 기사체로 만들어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편집자>

[아시아엔=편집국] “조국의 이름을 걸고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워 이기고 돌아오라.” 1960~70년대 베트남전 파병 장병들이 부른 군가는 단순한 행진곡이 아니라 전장의 정신무기였다. 황건(국군수도병원)·송영빈(이화여대)은 이들 군가의 가사를 분석해, 국가 이념과 집단 정체성을 어떻게 구축했는지 살폈다.

군가, 전쟁의 심리적 무기
군가는 단결과 사기를 북돋우는 노래이지만, 전시에는 심리전의 수단이 된다. 6·25전쟁이 전쟁가요를 병영 안으로 끌어들였다면, 베트남전의 군가는 오히려 국민 속으로 퍼졌다. 전장에 간 이는 아들이자 남편, 친구였고 국민은 그들의 노래를 함께 불렀다. 냉전과 반공 이데올로기 속에서 파병은 ‘평화를 위한 전쟁’으로 포장됐다. 군가는 ‘국가 명예’와 ‘자유 수호’를 강조하며 병사들의 사명감을 고양시켰다.

연구 방법과 핵심 결과
연구진은 1965~1973년 작사된 8편의 파월 군가-‘십자성 부대가’, ‘우리는 청룡이다’, ‘달려라 백마’, ‘맹호들은 간다’, ‘주월 한국군의 노래’, ‘돌아온 용사’, ‘이기고 돌아왔네’-를 분석했다. 텍스트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단어의 출현 빈도와 중심성을 계산한 결과, ‘평화(17회)’, ‘이름(14회)’, ‘조국(9회)’, ‘자유(9회)’, ‘월남(9회)’이 주요 단어로 나타났다. 중심성에서도 ‘평화’와 ‘조국’, ‘자유’, ‘위해’, ‘월남’이 높은 값을 기록했다. 즉, “조국의 이름으로 자유와 평화를 위해 월남에서 승리하자”는 집단 서사가 중심을 이뤘다.

노래마다 담긴 상징과 의미
‘십자성 부대가’는 “평화를 위해 싸운다”는 정당성을, ‘우리는 청룡이다’는 국가적 자부심을 강조했다.
‘달려라 백마’는 승전의 이미지를, ‘맹호들은 간다’는 조국의 부름에 응답하는 용맹을 담았다. ‘주월 한국군의 노래’는 ‘꽃’과 ‘만리’, ‘가슴’ 등으로 인간적 그리움을 표현했고, ‘돌아온 용사’와 ‘이기고 돌아왔네’는 귀환과 영광의 감정을 노래했다. 이 모든 노래는 ‘싸움’보다 ‘귀환과 승리’를 이야기했다. 전쟁을 치른 개인의 고통보다 국가의 명예가 강조되었다.

냉전의 그림자, 남성적 영웅주의의 미학
‘평화’는 전쟁을 정당화하는 상징으로, ‘조국’과 ‘이름’은 집단에 대한 헌신을, ‘이기’는 희생의 대가를 의미했다. 군가 속 ‘사나이’, ‘용사’, ‘대장군’ 등의 표현은 국가를 위해 싸우는 전사적 남성상을 이상화했다. 이 노래들은 파병 장병을 ‘국가의 아들’로, 전장을 ‘의무의 현장’으로 규정함으로써 당시의 국가주의적 분위기를 강화했다.

군가, 국민의 노래가 되다
‘달려라 백마’와 ‘맹호들은 간다’는 라디오와 대회를 통해 전국적으로 불리며 국민가요가 되었다. 군가는 병사의 노래이자 국민의 노래였고, 전쟁은 더 이상 “남의 전쟁”이 아닌 “우리의 전쟁”으로 인식되었다. 연구진은 “파월 군가는 군인의 정체성과 국민적 감정의 코드를 동시에 구성한 문화적 매개였다”고 분석했다.

‘정신전력’의 언어 구조
군가의 핵심어 ‘평화·조국·자유·이름·월남·이기’는 단순한 감정표현을 넘어, 병사들이 ‘왜 싸워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었다. 이 언어들은 전쟁을 합리화하고 개인을 국가에 종속시키며, ‘전쟁을 통한 평화’라는 역설적 메시지를 내면화시켰다. 결국 군가는 전투현장보다 더 깊이, 병사들의 마음속에서 작동한 정신전의 무기였다.

노래에서 기억으로
베트남 파월 군가는 국가의 이념과 병사의 정체성을 잇는 다리였다. ‘평화’와 ‘승리’의 단어들이 반복되며 전쟁의 기억은 공동체의 서사로 자리 잡았다. 군가를 함께 부르는 행위는 곧 “전쟁에 동참하는 국민”의 상징이 되었다. 1973년의 ‘이기고 돌아왔네’는 그 여정의 마침표였다. “평화를 위해 싸워 승리하고 돌아왔다”는 가사는 전쟁의 종결과 희생의 의미를 동시에 담았다. 오늘 우리가 그 노래를 다시 들을 때, 그것은 단지 군가가 아니라, 한 시대가 불렀던 ‘평화의 역설’을 증언하는 기록으로 남는다.

편집국

The AsiaN 편집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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