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향백리(花香百里), 주향천리(酒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그럴 만한 어른이 누구 있느냐고 물을 때 선뜻 대답하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2022년 4월 20일, 88세로 별세한 산민(山民) 한승헌(韓勝憲) 선생은 큰 이의(異議) 없이 인향만리의 대상으로 인정되는 어른이었다고 생각한다. 한 선생이 세상을 뜬 지 꽤 됐지만, 평소 그분을 존경하고 따랐던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지난 9월 30일 오후 모여 ‘산민포럼 발족식’을 가진 것은 스승, 사표, 롤 모델이 주는 인향만리의 길고 은은한 힘 아니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더욱이 평소 한 변호사를 존경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자취가 어려 있는 ‘노무현 시민센터’에서 행사가 열려 의미를 더했다.
개인적으로는 고교, 전민동(全民同·전북민주화동우회), 전언회(全言會·전북 출신 언론인 모임), 송벽회(宋碧會·전주고 출신 모임) 등 여러 곳에서 19년 차이 나는 먼 후배인 필자는 2022년 상례(喪禮) 때 조문, 추도식, 발인에서 선생을 모셨다.
먼저 아호 ‘산민’에 대해 여쭈었던 일이 기억난다. “산골 출신인 내가 그런 평범한 사람들을 돌보고 살자는 뜻이었다”며 “무슨 풍류나 덕담 차원의 아호는 아니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전 생애에 걸쳐 ‘산민 정신’을 중시하고 사셨다. 그는 성함에 대해서도 해학적인 풀이를 해줬다. “내가 맨날 판결에 진다고 핀잔을 듣지만, 나는 ‘헌법을 이기는 사람’이라고 이름에 써 있지 않은가?”
1957년 23세, 대학 4년 때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 1962년 검사로 출발한 뒤 1965년부터 변호사를 시작해 만 60년간 이 땅의 최고 법조인 중 한 분이셨던 한승헌 선생. 별세 때 88세(1934년생)였고, 1958년에 결혼한 동갑 부인 김송자 여사와 슬하에 3남 1녀가 있다. 장지는 ‘광주 5·18 민주묘지’였다.

장례는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상임 장례위원장은 함세웅 신부, 공동 상임집행위원장과 호상(護喪)은 여섯 분이었다. 선생은 민주화운동과 사법개혁 공로로 2018년 최고 등급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우리나라 인권변호사 1호는 고 이병린 변호사(1911년생)로 간주된다. 산민 선생과 비슷한 ‘1세대 인권변호사’라면 연장자인 이돈명(1922년생) 선생과 연하인 홍성우·조준희(이상 1938년생), 황인철 변호사(1940년생) 등인데, 모두 고인이다. 홍성우 변호사도 2022년 3월 별세했다.
산민 선생은 60년의 활동 기간 중 우리 사회에 너무 많은 족적을 남기셔서 몇 마디로 그려낼 수 없는 ‘큰 바위 얼굴’이다. 검사는 물론 변호사, 출판인, 시인, 작가, 감사원장, 서예가였고 국내 최고 권위의 ‘저작권 전문가’이기도 했다. 저작권 공부를 하신 이유를 여쭙자 “감옥 갔다 온 뒤 정부의 강압으로 한동안 변호사 자격을 잃어 호구지책으로 시작했다”고 말하신 적도 있다.
선생은 지식과 지혜에 겸손의 인품이 조화를 이룬 인향(人香)이 가득한 데다, 특유의 고품격 유머와 해학 능력까지 뛰어나 인문학적 함량이 절로 뿜어진다. 이날 선생을 회억하는 순서에서 유시춘(柳時春) 교육방송(EBS) 이사장은 “1987년 6월 항쟁 후 구속됐을 때 제일 먼저 면회 와서 ‘6월 항쟁이 왜 성공한 줄 알아? 성공회가 주도했기 때문이야’라고 말씀하시더라”며 “시련과 억압, 고초를 해학으로 풀어내는 선생의 유머는 고도의 지적 유희”라고 말했다. ‘호모 사피엔스’를 지나 자연스럽게 ‘호모 루덴스’로 승화시킨다는 것이다.
한 변호사의 오랜 지인 한 분도 유머 감각과 지조에 관해 이런 일화를 전했다. 한번은 한승헌 선생이 청와대에 초대받아 다녀오더니 “재벌회사 사외이사를 제시하더라”고 말했다. 형편을 좀 아는지라 “좀 받지 그랬어” 했더니 “나는 돈을 좋아하는데, 돈은 나를 싫어하나 봐”라며 “변호사는 어차피 난기난부(難飢難富)야”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한 변호사가 초임 검사 때부터 ‘면도칼’, ‘대쪽’이라고 불려 왔다”고 회고했다.

품격 높은 유머와 해학에 애착을 가지셨는지 ‘한승헌 변호사의 유머기행’(2007), ‘산민객담’(2005), ‘유머수첩’(2012)을 출간하기도 했다. 필자가 직접 들은 유머는 이런 식이었다.
1화.
“김 기자, YS가 ‘국토를 관통하는 관광도시’를 어떻게 발음하지?”
“그야 쉽죠. 국토를 ‘간통’하는 ‘강간도시’…”
“그럼 YS가 ‘유머’를 뭐라 하는지 아나?”
“모르겠는데요.”
“‘루머’라 하네. 비서진들은 혀가 짧아서 그렇다고 하는데, 내 보기엔 그 양반이 영어 ‘유머’를 진짜 ‘루머’로 아는 것 같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유니버스’ 대회라고 하는 걸 보면 서울대 철학과 청강생이라는 게 맞는 것 같제?”
2화.
“김 기자, 골프 잘 치나?”
“파리특파원 때부터 했으니 좀 하는 편입니다만…”
“난 좀 노력해 봤는데 안 되데. 그런데 내가 위안을 얻은 게 하나 있소.”
“뭡니까, 선배님?”
“박인비가 TV에 나와서 그러더만. 골프는 하체의 힘과 허리 회전으로 한다.”
“그렇다고 하죠…”
“그러니 55kg의 이 빈약한 하체에서 무슨 골프가 되겄어? 골프가 안 되는 게 내 운동신경 때문이 아니라 천부적 신체조건이 나쁜 탓이라는 걸 알고 안도했네.”
3화.
(커피를 마시던 중)
“이봐요, 검사들이 나를 자꾸 ‘빨갱이 변호사’라 부르는데 그건 틀렸어.”
“왜요?”
“난 아메리카노를 즐기거든…”
전북은 도세(道勢)가 약하지만 법조(法曹)의 초석을 다진 ‘대한민국 법조 3인’을 배출한 법조 명문의 고장이다. ‘사법의 화신’이라 불린 초대 대법원장 가인(佳人) 김병로(1889~1964), 서민의 법관으로 추앙받는 ‘청빈 판사’ 김홍섭(1915~1965), 소신의 대명사 ‘대쪽검사’ 최대교(1901~1992).
평생 ‘대쪽 딸각발이 변호사’로 일관한 한승헌 선생은 ‘법조 4인’에 추대되어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