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신앙을 탐구한 영적 대서사시입니다. 어린 시절의 회상에서 시작해 청년기의 방황, 마니교와 철학의 영향, 그리고 회심과 세례, 어머니 모니카와의 이별을 거쳐, 마지막에는 시간과 창조, 삼위일체의 신비에 이르기까지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시리즈는 그의 삶과 사상을 따라가며, 인간의 연약함과 은총의 깊이를 동시에 보여줄 것입니다. <편집자>
<고백록> 제1권은 “주여, 당신을 부르나이다”라는 기도로 시작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이 하느님을 찾을 수 있는 이유, 그리고 아직 알지 못하는 하느님을 어떻게 부를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는 “하느님은 우리를 창조하셨으므로, 우리의 마음은 당신 안에서 안식을 얻기까지 불안하다”고 고백한다. 이 유명한 문장은 책 전체의 핵심 주제를 응축한다.
그는 유아기부터 시작해 자신이 지은 죄를 고백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죄를 단순히 ‘행위’로 보지 않고, 그 동기와 본성에서 찾는다는 것이다. 갓난아이의 울음과 떼쓰는 행동조차 자기중심적 욕망의 표현이었다고 고백한다. 오늘날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발달 과정의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 있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 본성 속에 이미 ‘하느님과 단절된 상태’가 있다는 증거로 본다.
어린 시절 그는 부모와 교사로부터 라틴어를 배우며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언어 습득 과정은 인간이 이성을 통해 성장하는 여정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는 언어가 오만과 허영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단순한 말장난, 욕설, 남을 조롱하는 언행에서 이미 죄의 그림자가 드리운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린 시절의 작은 잘못들-거짓말, 훔쳐보기, 싸움-까지 죄로 규정한다. 현대 독자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관점은 죄를 단순히 법적 범죄나 사회적 일탈이 아니라, “하느님께로 향해야 할 의지가 자신을 향하는 것”으로 본다. 죄는 방향의 문제다. 인간의 본성이 하느님을 향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세속적 욕망을 향할 때, 그 모든 것이 죄로 드러난다.
그는 당시 교육제도에도 불만을 토로한다. 아이들을 체벌하며 억지로 라틴어 문법과 고전 문학을 가르쳤던 학교는 그의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글과 말의 능력을 키웠고, 훗날 수사학 교사와 교부 신학자가 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모순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교육은 필요했지만, 그 과정에서 강요된 폭력과 허영은 죄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시리즈 첫회에서 봤듯이 아우구스티누스는 제1권에서 끊임없이 하느님께 질문한다. “당신은 어디 계십니까? 어떻게 제 안에 계실 수 있습니까?” 그는 하느님이 피조물 속에 갇히실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동시에 모든 존재의 근원이기에 이미 자기 안에 계시다고 고백한다. 이는 신플라톤주의 철학의 언어와 기독교적 신앙이 교차하는 대목이다. 그는 하느님을 “지극히 높으시면서도 가장 가까이 계신 분, 노하시되 평안하시고, 갚을 빚이 없으나 마치 빚진 것처럼 갚아주시는 분”이라 묘사한다. 수사학적이고 시적인 이 표현은 그가 왜 서구 최고의 문장가로 꼽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제1권의 결론에서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이미 하느님의 은총이 자신을 이끌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어머니 모니카는 늘 아들의 세례를 위해 기도했고, 그 기도는 어린 시절의 그에게도 보이지 않는 영향을 끼쳤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직 하느님을 알지 못했지만, 그 갈망과 불안은 이미 마음속에 시작되고 있었다.
이 어린 시절의 고백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뿌리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유아기의 울음, 어린 시절의 장난, 교육 과정의 허영까지도 모두 죄의 구조 안에 포함시킴으로써, 그는 인간의 본질이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바로 설 수 있음을 드러낸다. 이처럼 <고백록>의 시작은 인간의 보편적 경험-유년기와 학창 시절-을 통해 죄와 은총이라는 주제를 드러내며, 독자를 자기 자신의 내면 성찰로 초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