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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⑥] “암브로시우스를 통해 겸손히 배우기 시작했다”

암브로시우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아직 진리를 붙잡지 못했으나,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는 보았다. 나는 교만하게 방황하다가, 주님께서 보내신 암브로시우스를 통해 겸손히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욕과 세속적 야망은 여전히 그를 붙잡고 있었고, 회심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는 진리를 향한 올바른 길 위에 서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신앙을 탐구한 영적 대서사시입니다. 어린 시절의 회상에서 시작해 청년기의 방황, 마니교와 철학의 영향, 그리고 회심과 세례, 어머니 모니카와의 이별을 거쳐, 마지막에는 시간과 창조, 삼위일체의 신비에 이르기까지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시리즈는 그의 삶과 사상을 따라가며, 인간의 연약함과 은총의 깊이를 동시에 보여줄 것입니다. <편집자>

로마와 밀라노, 암브로시우스와의 만남
아우구스티누스의 삶에서 제5권은 전환점이었다. 그는 카르타고를 떠나 로마와 밀라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마니교에 대한 환멸을 경험하고,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를 만나 기독교 신앙으로 서서히 나아가게 된다. 이 과정은 단순한 도시 이동이 아니라, 진리를 향한 그의 내적 여정의 결정적 단계였다.

카르타고의 실망, 로마로의 도피
카르타고에서 수사학 교사로 활동하던 아우구스티누스는 학생들의 난폭한 행동과 무책임한 태도에 염증을 느꼈다. 제자들은 수업료를 내지 않기 위해 학기를 마치기 전에 수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그는 “나는 학생들의 거짓과 방종에 지쳐 있었다”고 고백한다. 결국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로마로 향했다.

그러나 로마에서도 실망은 이어졌다. 학생들은 카르타고보다 더 교활했고, 수업료를 내지 않으려는 행동이 더 심각했다. 게다가 그는 로마에서 심각한 병에 걸려 죽을 뻔한 경험을 한다. 그는 이를 두고 “나의 교만을 꺾기 위한 하느님의 징계였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그때는 여전히 하느님을 진심으로 찾지 못하고, 단지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에만 감사했을 뿐이다.

마니교와의 결별
로마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의 저명한 교사 파우스투스를 만나게 된다. 그는 오랫동안 파우스투스가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지혜로운 인물일 것이라 기대했으나, 곧 실망한다. 파우스투스는 수사학적으로는 뛰어났지만, 실제로는 교리에 무지했다. 특히 자연현상이나 천문학에 관한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 만남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는 마니교가 진리를 설명하지 못하고, 오히려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나는 그들의 허영에 속았음을 알았다. 마니교는 공허했고, 그들이 약속한 진리는 없었다”고 고백한다. 이때부터 그는 마니교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독교로 바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진리에 목말랐고, 대신 철학과 신플라톤주의로 눈을 돌리게 된다.

밀라노로의 부름
로마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지자, 아우구스티누스는 밀라노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그는 로마 총독 심마쿠스의 추천을 받아 밀라노의 수사학 교수로 임명된다. 이때가 30세 무렵이었다. 밀라노는 당시 로마 제국의 정치적 중심지 중 하나였으며, 황제의 거주지이기도 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었다.

암브로시우스와의 만남
밀라노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운명적 만남을 갖는다. 바로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였다. 암브로시우스는 단순히 행정가이자 교회 지도자가 아니라, 지적이고 영적인 지도자였다. 그의 설교는 수사학적으로도 탁월했고, 동시에 깊은 신학적 통찰을 담고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처음에는 단순히 웅변가로서 암브로시우스를 존경했다. 그는 “나는 처음에 그의 설교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지 않았고, 단지 그가 어떻게 말하는지를 듣고자 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암브로시우스의 설교가 단순한 언어의 기술이 아니라, 성경의 깊은 의미를 드러내는 도구임을 깨달았다.

암브로시우스는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지 않고, 상징적이고 은유적으로 풀어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처음으로 성경이 단순히 조잡한 책이 아니라, 심오한 진리를 담고 있는 책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성경을 다시 읽을 용기를 얻었고, 점차 기독교 신앙으로 마음을 열어갔다.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
이 무렵, 어머니 모니카도 아들과 함께 밀라노로 왔다. 그녀는 아우구스티누스가 회심하기를 평생 기도하며 눈물로 간구해왔다. 밀라노에서 그녀는 암브로시우스와 교류하며 아들의 회심이 머지않았음을 확신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여전히 결혼과 정욕 문제로 갈등했지만, 모니카의 기도와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는 그의 마음을 조금씩 변화시켰다.

<고백록> 제5권은 아우구스티누스가 마니교와 결별하고, 기독교 신앙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전환점을 기록한다. 그는 로마와 밀라노에서의 경험을 통해 인간의 허영과 종교적 허상을 절감했고, 암브로시우스와의 만남을 통해 성경의 깊이를 새롭게 발견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아직 진리를 붙잡지 못했으나,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는 보았다. 나는 교만하게 방황하다가, 주님께서 보내신 암브로시우스를 통해 겸손히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욕과 세속적 야망은 여전히 그를 붙잡고 있었고, 회심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는 진리를 향한 올바른 길 위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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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석

'조국 근대화의 주역들' 저자, 傳奇叟(이야기꾼), '국민일보' 논설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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