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신앙을 탐구한 영적 대서사시입니다. 어린 시절의 회상에서 시작해 청년기의 방황, 마니교와 철학의 영향, 그리고 회심과 세례, 어머니 모니카와의 이별을 거쳐, 마지막에는 시간과 창조, 삼위일체의 신비에 이르기까지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시리즈는 그의 삶과 사상을 따라가며, 인간의 연약함과 은총의 깊이를 동시에 보여줄 것입니다. <편집자>
신플라톤주의와 철학적 돌파구
밀라노에 정착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여전히 방황하고 있었다. 그는 마니교의 허위성을 깨닫고 멀어졌지만, 아직 기독교를 전적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정욕의 굴레와 세속적 야망은 그를 붙잡고 있었고, 성경의 단순한 문자 표현은 그의 지적 자존심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이때 그가 접하게 된 것이 신플라톤주의였다. <고백록> 제6~7권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철학을 통해 신앙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이다.
정욕과 결혼에 대한 갈등
밀라노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수사학 교수로 명성을 쌓으며 사회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누렸다.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이 정숙한 혼인을 통해 신앙에 정착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여전히 정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주님, 저를 정결하게 하소서. 그러나 지금은 말고”라고 기도했다고 고백한다. 그의 마음은 두 갈래로 찢겨 있었다. 그는 진리를 향한 갈망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육체적 쾌락을 놓지 못했다.
교회는 결혼을 허용했지만, 가능하면 독신으로 사는 삶을 권장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결혼을 결심하기도 했으나, 이미 오랫동안 동거하던 여인과의 관계가 발목을 잡았다. 그는 그 여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아데오다투스를 사랑했지만, 동시에 정욕과의 싸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갈등은 그의 회심을 지연시키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철학적 갈망과 신플라톤주의
이 시기 아우구스티누스는 철학에 더욱 몰두했다. 특히 그는 플로티노스와 포르피리오스의 저작을 라틴어로 번역한 책들을 접하게 되었다. 이 신플라톤주의 철학은 그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신플라톤주의는 모든 존재의 근원이 하나(一)라는 사상, 즉 신적 존재로부터 만물이 유출되고, 다시 그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사상을 강조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철학을 통해 악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었다. 마니교가 악을 독립된 실체로 보았다면, 신플라톤주의는 악을 선의 결핍으로 설명했다. 악은 본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선이 부족한 상태라는 것이다. 이 관점은 훗날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의 핵심 사상이 된다. 그는 “나는 악이 실체가 아님을 깨달았다. 악은 선의 결핍, 즉 하느님을 떠난 상태일 뿐이었다”고 고백한다.
내적 상승- ‘빛’의 체험
신플라톤주의는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단순한 철학 이상의 경험을 제공했다. 그는 “나는 내 영혼 안으로 들어가 미약한 눈으로 영원한 빛을 보았다”고 기록한다. 이 빛은 물리적 빛이 아니라, 변치 않는 진리이자 존재의 근원으로서의 하느님을 상징했다. 그는 잠시나마 영적 실재를 직관한 듯한 체험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신플라톤주의가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신플라톤주의는 철학적으로 하느님의 존재를 설명했지만, 인간의 죄와 구원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못했다. 그는 영혼이 하느님을 향해 상승하는 길을 보았지만, 그 길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은혜와 그리스도의 중재를 발견하지 못했다.
암브로시우스의 설교와 성경 해석
이 무렵 아우구스티누스는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계속 들으며, 성경을 새롭게 이해하기 시작했다. 암브로시우스는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지 않고, 은유와 상징을 통해 깊은 의미를 드러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성경의 단순한 문체를 조롱했던 과거를 부끄러워하며, 그 안에 담긴 진리를 조금씩 받아들였다.
특히 창세기 해석에서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암브로시우스는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신학적 메시지로 풀어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성경이 철학과 대화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이때부터 그는 성경을 진리의 원천으로 다시 탐구하기 시작했다.
점성술과 미신에 대한 거부
또한 그는 이 시기 친구 피르미니우스와 대화하면서 점성술의 허구성을 깨달았다. 당시 많은 지식인들이 별자리와 운명을 믿었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그것이 단순한 우연의 결과임을 인정했다. 그는 “쌍둥이로 태어난 두 사람의 삶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 점성술의 거짓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이는 그가 미신적 사고에서 벗어나 이성적, 신학적 사고로 나아가는 중요한 발걸음이었다.
갈등 속의 진리 탐구
아우구스티누스는 신플라톤주의 철학과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통해 진리의 문 앞에 다가갔다. 그는 하느님을 영적 존재로 이해했고, 악의 문제에 대한 답도 찾았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회심을 주저했다. 정욕과 세속적 욕망이 그를 붙잡고 있었고, 완전한 순종의 결단은 내리지 못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진리를 보았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묶여 있었다. 쇠사슬은 정욕이었고, 나는 그 굴레를 스스로 끊을 수 없었다.”
<고백록> 제6~7권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적 돌파구를 기록한다. 그는 신플라톤주의를 통해 악의 문제를 해결했고, 영원한 빛을 직관하는 체험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구원이 아니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은혜와 그리스도의 구속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철학을 통해 진리에 다가갔지만, 철학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는 이미 문 앞에 있었으나,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열쇠는 오직 믿음과 은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