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우근 칼럼] “진리와 자유는 하나다”

‘항상 있을 것들’의 목록에 정의의 자리는 없다. 도덕이나 신념이나 이데올로기의 자리도 보이지 않는다. 정의, 도덕, 신념, 이데올로기 저 너머에 사랑이 있을 따름이다. 광복 80주년을 지내면서, 진실과 자유를 품은 그리스도의 사랑 앞에 고요히 머리 숙인다. 사랑이 으뜸이다. 사진은 연세대 교정에 세워진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머릿돌.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은 우리 역사는 찌든 가난을, 독재의 사슬을, 이념의 족쇄를 풀어헤치며 자유를 향해 피와 땀과 눈물을 쏟고 또 쏟아낸 인고(忍苦)의 역정(歷程)이었다.

그 고난의 길목에서 산업화와 민주화의 험난한 길을 미흡하나마 꾸준히 달려온 우리는 이제 분단의 질곡(桎梏)으로부터의 해방인 통일의 길목 앞에 서있다.

성서의 역사도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연면한 해방의 기록이다. 천지창조는 카오스의 어둠를 깨뜨리는 코스모스의 빛 곧 혼돈으로부터의 해방이었고, 모세의 출애굽은 권력의 억압과 착취로부터의 해방이었으며, 뭇 예언자들의 선포는 우상으로부터 영혼의 자유를 외친 해방의 목소리였다.

​사도 바울의 생애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그 거대한 두 산맥에서 정신의 자유를 찾아가는 해방의 긴 여정이었다. 선지자 이사야와 사도 베드로가 소망했고 사도 요한이 바라본 ‘새 하늘과 새 땅’은 옛 하늘과 옛 땅의 사슬을 풀어헤쳐 궁극적인 영혼의 자유를 성취하는 이상향(理想鄕)의 묵시였다.(이사야 65:17, 66:22, 베드로후서 3:13, 요한계시록 21:10)

“사로잡힌 자에게 해방을, 눈먼 이에게 광명을, 억눌린 사람들에게 자유를!”

정치구호도 아니고 사회운동 슬로건도 아니다. 예언자 이사야의 선포요, 예수의 공생애 첫 선언이다(이사야 61:1,2, 누가복음 4:18). 그 예수가 외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32) 진리를 거스르는 삶은 자유 없는 굴종의 노예나 다름없다는 뜻이리라.

진리와 자유는 하나다. “진리가 무엇인가?” 총독 빌라도의 물음에 예수는 아무 대답도 내놓지 않았다. 예수의 반역혐의를 심판하는 재판관 빌라도가 궁금했던 진리는 그 혐의의 정치적 사실(fact) 관계였을 것이다. “네가 유대인의 왕인가?”라는 물음이 그것을 말해준다(요한복음 18:33).

그러나 예수의 진리(Truth)는 ‘정치적 사실’이 아니었다. ‘인격적 진실’이었다. 예수는 그 진실을 ‘사랑’이라고 단언한다.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3:34). 예수는 십계명을 다시 잘게 나눈 613개 율법조항의 본뜻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고 못 박았다(마태복음 22:40). 진리와 자유와 사랑은 하나다.

​세상에 진리라고 불리는 이념들이 적지 않지만, 순수하고 진정한 최고의 이념은 사랑이다. 사랑은 분노와 증오를 넘어 평화를 지향하는 열정이다. 사랑을 거스르는 정의는 갈등의 교리, 증오의 폭력, 분열의 도그마일 뿐이다.

모든 분열의 원인은 공동체를 파멸로 이끄는 이기적인 지배욕, 권력욕 곧 상대방을 짓밟고 올라서려는 갑(甲)질의 욕망이다. 정치권력·경제권력·문화권력 심지어 종교권력마저도 예외가 아니다. 세상의 모든 권력자들이 정의를 외쳐대고 있지만,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찬 ‘대결적 정의’는 죽음의 형틀이나 다름없다.

사랑 없는 정의는 진실의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옛 로마인들도 알고 있었다. ‘극단의 정의는 극단의 불의’라는 것을(Summum jus, summa injuria).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시편 85:10) 사랑이 곧 진실이고, 정의와 평화가 하나라는 확신의 고백이다.

사랑의 넋을 품고 평화의 얼을 지닐 때만 정의도 이념도 비로소 진실이 된다. 사랑이 최상의 정의요, 최선의 이념이다. 사랑이 곧 진실이고 자유이기에.

한국과 일본의 현(現)세대에 차마 사랑까지는 기대하지 못하겠다. 다만 두 나라의 ‘미래세대를 향한 사랑’이 아쉬운 것이다. 후손들에게까지 영영히 원수처럼 으르렁대는 이웃나라를 물려줄 것인가? 일본은 자기네 땅에 핵폭탄을 퍼부은 ‘귀축(鬼畜)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었고, 수백년 적대국인 독일과 프랑스는 ‘미래세대를 위한 공동 역사교과서’를 함께 발간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만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이 민족, 이 나라, 그리고 우리 사회 각 부문이 사랑을 잃어버린 채 깊은 분열과 증오의 늪에 빠져있다.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으뜸은 사랑이다.”(고린도전서 13:13)

신앙세계의 믿음과 소망조차도 사랑보다는 낮은 자리에 있을진대, 하물며 세속세계의 믿음인 민족주의나 현세적 소망인 정의의 이념이 어찌 지고(至高)한 사랑을 뛰어넘을 수 있겠는가?

‘항상 있을 것들’의 목록에 정의의 자리는 없다. 도덕이나 신념이나 이데올로기의 자리도 보이지 않는다. 정의, 도덕, 신념, 이데올로기 저 너머에 사랑이 있을 따름이다. 광복 80주년을 지내면서, 진실과 자유를 품은 그리스도의 사랑 앞에 고요히 머리 숙인다. 사랑이 으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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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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