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산업IT-과학칼럼

체코원전 수주 ‘팀 코리아 성과’냐 ‘굴욕적 양보’냐…정치권 공방 ‘유감’

체코의 신규 원전 예정부지인 두코바니 전경.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우건설 제공>
[아시아엔=손옥철 현대중공업 입사, 현대엔지니어링 부사장 역임, 마사모'(마르코글방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장] 요즘 체코 두코바니 원자력발전소(이하 체코 원전) 수주를 둘러싸고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수원, 한전)가 웨스팅하우스(이하 WH)와 맺은 계약 때문에 정치권이 시끄럽다. 계약 조건이 지나치게 불리하고, 특히 원천기술료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원자력 전문가도 아니고 이 사업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는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현직에 있을 때 겪었던 발전소 건설 수주 협상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협상 과정에서 느낀 긴장과 초조, 그리고 합의 후에는 너무 양보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며 잠을 설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나라는 1977년 준공된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50만 킬로와트, 2016년 영구폐쇄)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26기, 2천6백만 킬로와트 규모의 원자력 설비를 건설해 가동 중이다. 초기 8기는 외국 회사 주도로 건설되었는데, 노형과 용량이 제각각이고 도입선도 달라 기술 축적이 쉽지 않았다. 이에 한전은 한국 표준형 원전을 개발해 동일 설계로 반복 건설함으로써 국산화와 기술 자립을 꾀했다. 이렇게 탄생한 표준형 발전소가 바로 이번 체코 원전에 입찰한 APR-1000(단위용량 100만 킬로와트)이다.

1982년 계획된 이 표준형은 영광 3·4호기에 처음 적용됐다. 1985년 국제 입찰 결과, 여러 차례 원자로를 공급한 WH 대신 기술 전수에 적극적이던 컴버스천엔지니어링(CE)이 선정되었다. WH는 CE가 실적이 적어 위험하다며 항의했지만, 영광 3·4호기는 성공적으로 완공됐다. 기술 이전도 순조롭게 진행돼 울진 3·4호기부터는 원자로 공급사가 국내 두산중공업으로 바뀌었다. 이후 한전은 국내에서 APR-1000을 총 12기 건설해 현재 1,200만 킬로와트를 생산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 한전은 APR-1000의 용량을 키운 APR-1400(단위용량 140만 킬로와트)을 개발했다. 이 신형 원전은 울산과 울진에 각각 2기씩 설치돼 560만 킬로와트를 생산 중이다. 이 실적을 기반으로 한국은 최초의 원전 수출에 성공한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에 APR-1400 4기(560만 킬로와트)를 200억 달러 규모에 계약했고, 운영까지 포함하면 400억 달러에 달했다. 당시 최대 규모의 플랜트 수출로서, 한국 원자력 기술자들의 자부심을 크게 높였다.

그러나 이 수주로 한전과 WH 간에 분쟁이 불거졌다. 2000년 WH가 경영난에 빠진 CE를 인수하면서 CE 기술이 WH 소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WH는 바라카 사업에서 자신들이 원천기술 제공자라 주장하며 핵심 기자재의 40%를 공급했다. 계약금액 29억 달러, 총 공사비의 약 15%였다. 준공 후에도 WH는 한수원을 상대로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합의로 마무리됐다. 정확한 액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적지 않은 금액이 오갔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원자력 시장은 큰 부침을 겪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고로 안전성 우려가 커지고, 신재생에너지가 성장하면서 원전은 침체에 빠졌다. 독일 등은 탈원전을 선언했고, 미국은 1979년 스리마일섬 사고 이후 30년 넘게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했다. WH는 2017년 파산해 도시바에 넘어갔다가 캐나다 회사에 매각됐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도 이런 국제적 추세와 맞닿아 있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상황은 반전됐다.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으로 유럽은 에너지 위기에 빠졌고, 인공지능 시대의 폭발적 전력 수요에 신재생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현실이 드러났다. 기후 위기대응 차원에서도 탄소 배출이 거의 없는 원전이 다시 주목받았다. 원전은 통제 가능한 위험이지만, 기후 변화는 피할 수 없는 재앙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유럽, 미국, 중동, 아시아 각국이 원전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가운데)이 2024년 7월 18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체코 신규원전 건설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은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오른쪽은 안세진 원전산업정책국장.

체코 원전 수주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프랑스 EDF는 절차 문제를 제기하며 지방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해 계약이 중단됐지만, 최고행정법원이 이를 취소하면서 최종 계약이 성사됐다. 한편 WH는 수주 경쟁에서 밀리자 미국 법원에 지식재산권 소송을 제기하며 제동을 걸었다. 결국, 한수원·한전은 지난 1월 WH와 분쟁 종료에 합의했는데, 그 조건이 공개되면서 ‘불평등 계약’ 논란이 불거졌다.

정치권이 문제 삼는 계약 조건은 이렇다. 앞으로 50년간 수출 원전 1기당 기술사용료 1억7500만 달러를 지급하고, 6억5000만 달러 규모의 물품 및 용역 구매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또한, 북미, EU, 영국, 우크라이나, 일본에서 신규 원전 수주 활동을 할 수 없다는 제한도 포함됐다.

비판 요지는 세 가지다. 첫째, 기술료와 의무 구매액이 과도하다는 것. 그러나 기술료는 총사업비의 1.85% 수준으로 결코 높다고 보기 어렵다. WH가 보유한 냉각재계통, 증기발생기, 핵연료 집합체 등 핵심 기술은 독점적이라 일정 수준의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물품 구매 6.5억 달러도 문제 삼기 어렵다. 한국 표준형이라 해도 일부 기자재는 외국에서 사와야 한다. 2009년 UAE 바라카 사업 때는 WH에서 29억 달러어치를 구매했으니, 이번은 오히려 그 절반 수준이다.

둘계약 기간 50년은 원전의 사업 기간이 긴 점을 감안해도 과도하다. 시행 기간이 긴 만큼 일정 시점 이후 재협상을 할 필요가있다.

셋째, 북미, 유럽, 일본 등 주요 시장 진출 제한도 아쉬운 부분이다. 특히 그동안 활발하게 수주활동을 벌였던 폴란드와, 전후 복구공사가 기대되는 우크라이나를 포기한 것이 뼈아프다. 그러나 WH와 협력해 콘소시엄 방식으로는 길이 열릴 수 있다. WH도 설계부터 건설, 운영까지 아우르는 일괄 서비스 능력에서 세계 최강인 한국의 협조가 필요할 것이다. 한·미가 함께 해외 원전에 진출한다면 강력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미국의 원전 확대 정책도 주목할 만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050년까지 3억 킬로와트의 원전을 새로 건설하겠다고 공언했다. 향후 25년 동안 매년 체코 원전 6개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오랜 불황 속에 인력과 노하우를 잃은 미국 업체들 한국과의 협력을 원할 것다.

물론 공기업이 불리한 계약으로 국가에 손해를 끼쳤다면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국제 정치가 힘으로 좌우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조건을 수용해야 할 때도 있다. 이를 두고 정치권이 ‘기술 주권을 팔아먹은 매국 행위’라 몰아가는 것은 과도하다. 혹여 전 정부 성과를 깎아내리려는 의도라면 더 큰 문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개입 여부도 논란이다. 원전은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 정상들이 직접 관여하는 경우가 많다. 2024년 7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뒤 EDF와 WH의 방해가 극심했으니, 윤 전 대통령이 서둘렀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이는 통치 행위 차원으로 봐야 한다. 대통령실이 산업통상자원부에 절차 준수 여부를 조사하라고 지시했으니 곧 밝혀질 것이다.

UAE 바라카에 이은 체코 원전 수주는 한국 원전 생태계를 되살리고 연간 수십조 원의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게 한다. 두 사업 모두 정부, 공기업, 민간이 협력한 ‘팀 코리아’ 전략의 성과다. 이번 계약에 불리한 조건이 포함된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 원전 수출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WH와의 협력이 불가피하다. 특히 미국 시장이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팀 코리아’와 WH가 손잡아 ‘팀 코러스(Korea+US)’를 이룬다면, 이번 계약은 전화위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편집국

The AsiaN 편집국입니다.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본 광고는 Google 애드센스 자동 게재 광고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합니다.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