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이렇게 시끌버끌한 걸까. 집합시간까지 아직 한 시간이 남았는데도 벌써 롯데리아 앞 주차장에 모인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고려인 청소년들은 장날 시장처럼 시끌벅적하다. 한쪽에선 선글라스와 모자를 뽐내며 친구들의 관심을 끈다. 모두 다이소에서 산 것이다. 이들에게 다이소는 명품이 모인 백화점 같은 곳이다.
오늘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비전 캠프를 떠나는 날. 고려인 청소년들에게 집을 떠나는 일은 그 자체로 큰 즐거움이다. 대부분의 부모가 외국인노동자로 일하고 있어 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나기 어렵고, 언어 문제도 있어 일상 속 외출조차 쉽지 않은 형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해마다 상·하반기에 한 번씩 캠프와 체험학습을 진행한다. 작년에는 50명을 인솔했지만, 올해는 예산 문제로 40명으로 줄였다. 마음이 몹시 아팠다. 관광버스 한 대와 12인승 스타렉스를 동원해 숙소와 식사까지 해결하며 캠프를 떠나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다. 후원받는 것이 익숙지 않아 자비로 감당하지만, 그래서 더욱 마음 편히 아이들 중심의 일정을 짤 수 있다.

버스는 어느새 안성을 떠나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로 달린다. 우리 아이들은 바다만 봐도 만족도 200%다. 중앙아시아에선 바다를 볼 수 없어 캠프 장소는 늘 바다와 가까운 곳으로 정한다. 올해도 바다를 낀 신두리를 첫 일정으로 잡았다. 자연 생태계 속에서 조국의 모습을 느끼고 만져보는 체험은 청소년들의 정체성 함양에 큰 의미가 있다.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여덟 팀으로 나눠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영상을 올리고,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팀에게 상품을 주기로 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숙소에 도착하면 2박 3일 동안의 식재료와 간식을 옮기는 일부터 시작된다. 경비를 줄이기 위해 매 끼니를 아이들과 직접 해 먹기로 했다. 각종 간식과 과일도 한가득 준비해 마음은 든든하다. 아이들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영장에 모여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웃으며 신나게 논다. 그 소리는 주방까지 흘러온다.

저녁 준비는 걱정 없다. 아내가 미리 메뉴와 레시피, 반찬 구성까지 꼼꼼히 일정표에 적어주었기 때문이다. 고기 볶는 냄새가 여름 바람을 타고 수영장으로 퍼진다. 신나게 놀던 아이들의 배도 슬슬 고파질 것이다. 정신없이 칼질을 하며 나는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곳 대한민국이 ‘마음껏 웃고 떠들 수 있는 조국’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차별과 냉대 속에 자란 이 아이들이 상상 속 조국이 아니라, 현실 속 따뜻한 조국을 느끼길 바란다. “이곳이 바로 너희의 조국이란다. 마음껏 소리 질러보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러나 식사 전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 있다. 바로 성경 암송이다. 한국어와 러시아어로 성경구절을 완벽히 외워야 식사를 할 수 있다. 팀 전체가 통과해야 한다. 한국어가 서툰 친구가 암송을 시도할 때면, 옆 친구들이 손을 모으고 기도해 준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서툰 발음이지만 통과의 기쁨은 크다. 아이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아멘!”을 외친다. 곧이어 웃음꽃이 피고, 8팀 모두 무사히 통과해 줄을 선다. 고기 냄새가 암송의 동기였던 것이다. 선생님들도 예외는 없다. 암송을 마친 뒤 아이들의 검사를 맡는다. 총 1시간이 걸린다.

드디어 식사 시간. 아이들은 고기와 밥을 산처럼 퍼 담는다. 그런데 이럴 수가! 46명이 먹을 밥을 넉넉히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부족할 것 같다. 20명이 줄을 서 있는데, 부득이하게 적당히 나눠주기로 했다. 부족한 부분은 간식으로 보충하기로 마음먹고, 급히 수박과 복숭아를 더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들은 상황을 눈치챘지만 더 달라고 아우성치지 않았다. 웃으며 기다리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다. 아내가 알았다면 야단맞았을 일이지만, 아이들은 나의 마음을 안다. 교장선생님의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는 이 아이들, 그들의 눈빛이 나를 위로한다.
대안학교를 운영하며 나는 목회자로서 느끼지 못한 행복을 느끼고 있다. 아이들의 위로는 어떤 격려보다 크고 따뜻하다. 부족했지만 정성껏 먹였으니, 이제 진짜 시간이 시작된다. 비전 캠프는 단순히 먹고 노는 캠프가 아니다.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이 아이들이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