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3대 고백록’으로 불리는 세 권은 4세기 기독교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프랑스 계몽사상가 루소의 <고백록>, 그리고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참회록>이다. 시대와 문화는 다르지만, 이 세 책은 모두 인간 내면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자아 성찰의 깊이를 보여준다. <아시아엔>은 이들 세 사람과 저작을 먼저 소개한 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벤저민 프랭클린의 <자서전> 등을 정리해 나갈 계획이다. <편집자>
“삶은 무의미하고 악하다.” 생의 중반에 접어든 톨스토이는 냉소적인 선언을 남겼다. 한때 유럽 문단의 찬사를 받으며 문학과 사상의 중심에 섰던 이 거장은, 뜻밖에도 자신의 삶을 “주정뱅이 혹은 정신병자와 다를 바 없다”고 냉혹하게 규정했다.
이 같은 자각은 자아도취적 삶에 대한 철저한 회의에서 비롯됐다. 그는 모든 것을 갖춘 채 욕망을 좇아 살아온 자신의 인생이 무의미하다고 고백하며, 이 판단이 당시엔 절대적인 진리처럼 여겨졌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곧 그 생각은 자신의 삶에만 해당하는 진실일 뿐, 인류 전체의 삶에 적용할 수는 없는 오류였음을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톨스토이, 절망에서 신앙으로… “삶은 오직 타인을 위한 헌신 속에 의미 있다”
그 전환점은 성경 요한복음의 한 구절에서 비롯됐다.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사람들, 악을 행하기에 빛을 피하는 이들”이라는 대목에서 그는 자신의 위선을 직면했다. 이후 그는 인생의 방향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타인을 위한 삶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핵심임을 받아들였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자신만을 위해 일할 수 없습니다. 타인을 위해 일할 때만 행복과 의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성만으로는 삶을 설명할 수 없다”…소박한 신앙인의 삶에서 답을 찾다
톨스토이는 이성 중심의 삶이 지닌 한계를 절감했다. 그는 오랜 철학적 탐구 끝에, 이성은 진리를 전부 설명하지 못하며, 오히려 삶을 공허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가 찾은 대안은, 소박하게 노동하며 신을 믿는 농민들의 신앙심이었다.
삶의 모든 현상에는 원인이 있다는 철학적 고찰 속에서 그는 ‘궁극의 원인’을 하느님으로 인식하게 됐으며, 신을 믿지 않으면 결국 삶의 무의미함 때문에 자살할 수밖에 없다고 느꼈다. 이는 실존의 벼랑 끝에서 신앙으로 방향을 틀게 한 결정적 계기였다.
그는 자신의 회심을 “물살을 거슬러 다시 노를 젓기 시작한 순간”으로 묘사한다. 신(하느님)은 그가 향해야 할 ‘강가’였고, 전통은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 그리고 자유는 그 물살을 거슬러 오르게 해주는 노였다는 것이다.
신앙, 죽음 너머 의미를 부여하는 유일한 길
톨스토이는 결국 신앙이야말로 삶에 불멸의 의미를 부여하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과거 신앙을 비이성적이라며 일축했던 자신의 태도를 반성하며, 지금은 신앙의 교리들이야말로 삶의 무의미함을 해결해주는 실질적 힘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진리가 특정한 개인의 철학적 사유에서 도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연합된 사람들의 공동체에만 계시된다는 신념도 드러냈다. 신앙은 철저히 개인적일 수 없으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는 사상이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교회의 제도와 교리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에 대한 후회도 언급했다. 니케아 신조와 같은 교리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이성적으로 설명하려 애쓴 자신의 태도가 문제였다는 자각이다. 그는 당시에는 이성보다 전통을 더 우위에 두고, 의식을 충실히 수행하는 데 집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는 한마음으로 서로 사랑합시다”라는 예배 속 문구에서 진정한 신앙의 본질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삶은 신앙을 통해서만 죽음을 넘어 의미를 얻습니다. 신앙은 제왕이든 농노이든, 아이든 노인이든 누구에게나 답을 줍니다.”
이처럼 톨스토이는 자아의 해체와 절망의 끝에서 신앙을 통해 다시 삶을 재구성했고, 그 과정에서 이성, 전통, 사랑, 공동체가 어우러진 사상적 전환을 이루어냈다. 대문호의 고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깊은 울림을 던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