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김시림 시집 ‘나팔고둥 좌표’..사라진 것들을 향한 조용한 ‘애도’

김시림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나팔고둥 좌표>(상상인 시인선 069)가 2025년 5월 21일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평택시문화재단의 ‘2025 전문예술활동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다.
전남 해남 출신인 김시림 시인은 삶의 언저리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과 존중을 꾸준히 노래해왔다. 이번 시집에서도 시인은 병원, 산사, 무너진 집터, 수몰된 마을 등 기억의 경계에서 점점 흐려지는 장소와 존재들을 불러내며, 감정의 과잉 없이 절제된 언어로 슬픔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전한다.
표제작 ‘나팔고둥 좌표’는 병원 로비의 수족관과 병실 속 죽음을 앞둔 존재의 여정을 함께 둔다. 시인은 “몰래몰래 눈에 보이지 않게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일까”라고 물으며, 생의 마지막 순간조차 방향과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나팔고둥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생의 흔적을 감각적으로 묘사한 이 시는, 시집 전반의 정조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시인의 따뜻한 시선은 또 자연과 생명에 깃든 비가시적인 존재들을 향한다. ‘조등을 걸다’에서는 “작고 가벼운 것들도 쌓이고 쌓이니 폭력이 된다”는 통찰이, ‘햇살 숟가락’에서는 말을 잃은 노인과 죽은 갈참나무가 함께 침묵의 공동체를 형상화한다. 나무, 돌, 햇살, 물결과 같은 미세한 이미지들이 시인의 시선을 통과하며 하나의 세계로 조직된다.
4부로 구성된 시집에는 ‘두 개의 발자국은 어디로 갔나’, ‘이토록 가깝고도 먼’, ‘대청호 아래’, ‘우도에서’ 등 총 60편의 시가 실렸다. 문학평론가 방민호는 해설에서 “떠남과 상실을 통과한 생명들이 서로를 양육하는 숲으로 향한다”며, 이 시집을 “조용한 그러나 무한히 깊은 교감의 세계”로 평가했다.
시인 황정산 역시 “작고 약하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정 어린 눈길”을 이 시집의 미덕으로 꼽으며, “우리 모두가 나팔고둥이자 개망초이며 강아지풀일 수 있음을 자각하게 만든다”고 했다.
시인의 “밀물이다가 썰물이다가”라는 말처럼, <나팔고둥 좌표>는 끝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마음의 파도들을 모래톱에 내려놓고 다시 먼바다를 향해 떠나는 여정이다. 사라진 것들을 향한 애도의 시학, 그 조용한 울림은 독자의 내면에 오래 남을 것이다.
시인 약력
김시림 시인은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다. 1991년 <한국문학예술>, 2019년 <불교문예>로 등단하였으며, 현재 <불교문예> 편집장으로 활동 중이다. 『쑥냄새 나는 내 이름의 꿀떡게 바닷가』, 『부끄럼 타는 해당화』 등 네 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심호이동주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