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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순의 커피인문학] 미국 남북전쟁의 스타 ‘커피밀 샤프스 라이플’

월터 킹 대령이 1859년 개조한 ‘샤프스 카빈 뉴모델 1859 ‘커피밀’ 라이플’. 개머리판 오른쪽에 곡물을 가는 손잡이가 보인다.(출처 IMA, International Military Antiques)

1861년부터 4년간 지속된 미국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에서 개머리판에 커피 그라인더를 단 소총이 등장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스프링필드 병기박물관(Springfield Armory Museum)이 소장한 ‘샤프스 카빈 뉴 모델 1859 ‘커피밀’ 라이플'(Sharps Carbine New Model 1859 ‘Coffee Mill’ Rifle)은 커피 애호가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샤프스’는 1848년 발명자인 크리스티안 샤프스(Christian Sharps)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카빈(Carbine)’은 ‘말을 타고 싸우는 기병이 사용하는 소총’을 의미한다. 갑옷으로 중무장한 중기병이 아닌, 기동성을 중시한 경기병의 무기를 뜻하며, 프랑스어 ‘카라빈(Carabine)’에서 비롯된 용어다. ‘커피밀(Coffee Mill)’은 원두를 분쇄하는 그라인더를 일컫는다. 1859년은 남북전쟁이 발발하기 2년 전으로, 링컨이 이끄는 북부와 연방 탈퇴 및 노예제 유지를 고수한 남부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였다.

개머리판 아래에 있는 홈을 통해 커피, 옥수수, 밀 등의 알갱이가 그라인더 공간으로 들어간다.

이 무렵, 미주리주 제4기병대의 월터 킹 대령은 병사의 기동성을 높이기 위해 무장 중량을 줄이는 방안을 고민했다. 당시 군인의 필수품으로는 커피, 신발, 담배, 총알이 꼽혔다. 킹 대령은 병참 부담을 덜기 위해 식량을 줄이는 대신, 부족할 경우 들판에 널린 옥수수, 밀, 귀리 등을 갈아 병사들이 섭취하거나 말의 사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소총에 그라인더를 장착했다. 농산물이 풍부한 미주리주는 남북군이 공방을 벌이며 치열하게 전투를 펼친 지역이기도 하다.

개머리판에는 원래 그리스와 천을 보관하던 홈이 있었으나, 이를 확장하여 바퀴 형태의 그라인더 칼날을 장착했다. 이 그라인더는 개머리판 아래의 투입구와 연결돼 있으며, 총을 뒤집어 하늘을 향하게 한 뒤 커피 원두나 곡물 알갱이를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개머리판 옆면의 반달형 홈을 통해 분쇄된 가루가 배출된다.

샤프스 소총은 기존의 머스켓(musket)에 비해 총열이 짧고 강선이 있어, 사정거리와 명중률이 크게 향상됐다. 이 덕분에 은폐 상태에서 오랫동안 대기하는 저격수에게 매우 유용했으며, 커피는 졸음을 쫓고 집중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생명줄과도 같은 존재였다.

분쇄된 커피나 곡물 가루는 손잡이 반대편의 반달형 홈을 통해 배출된다.

당시에는 인스턴트커피가 개발되기 전이어서, 커피는 원두 상태로 지급됐다. 볶은 원두는 무게가 가벼워 기병에게 특히 적합했다. 전투 중 깨끗한 식수가 귀했기 때문에, 커피는 오염된 물을 끓여 소독해 마시는 데도 유용했다.

미국 정부는 남북전쟁을 통해 커피의 군용 효용성을 인식하고, 전쟁 이후 인스턴트커피 개발의 동기를 얻었다.

“남북전쟁의 진정한 스타는 커피였다”는 말이 과장만은 아니다. 스미스소니언 역사박물관의 큐레이터 존 그린스펀(John Grinspan)은 <뉴욕타임스> 기고문 “How Coffee Fueled the Civil War(커피가 어떻게 남북전쟁을 부채질했는가)”에서 “전쟁, 총알, 대포, 노예, 어머니, 심지어 링컨보다 ‘커피’라는 단어가 병사들의 일기에 더 자주 등장했다”고 밝혔다. 북군을 지휘했던 벤자민 버틀러(Benjamin Butler) 장군도 “병사들이 아침에 커피를 마시면 그날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다”며 커피 음용을 장려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처럼 ‘커피 찬가’가 이어지면서 ‘커피밀 샤프스’는 골동품 시장에서 우리 돈 4,000만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된다. 실제 전쟁 당시 개조된 수는 많아야 50정 정도로 추정되며, 현존하는 실물도 극소수여서 위조품이 유통되는 사례도 있다.

『Civil War Guns』(1962) 300쪽에 실린 윌리엄 머피 관장의 시연 사진. 이 사진이 ‘커피용 총’이라는 인식을 널리 퍼뜨렸다.

이 소총이 ‘커피용 총’으로 각인된 데에는 해프닝이 하나 있었다. 1960년대, 스프링필드 병기박물관의 관장이던 윌리엄 머피(William B. Edwards)가 관람 중이던 여성들 앞에서 커피밀 샤프스에 원두를 넣고 갈아보이는 장면이 촬영됐고, 이 사진이 베스트셀러 도서인 『Civil War Guns』(1962) 300쪽에 실렸다. 이 장면이 널리 알려지면서 ‘커피 추출용 소총’이라는 이미지가 고착되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커피밀 샤프스를 시험해본 결과, 투입구와 분쇄 공간이 작고 갈린 입자도 고르지 않아 커피 분쇄보다는 곡물을 가는 용도에 더 적합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럼에도 커피 문화의 확산과 흥미로운 사연 덕분에, 킹 대령의 개조 소총은 전장의 군인을 각성시키는 ‘커피 그라인더 라이플’로 점점 더 주목을 받고 있다.

박영순

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교 커피학과 외래교,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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