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대통령들의 집권 초반 국정 지지율은 70%를 웃돌았으나, 통합의 실패로 급격히 하락한 사례가 반복되었습니다. 국론의 분열을 넘어서야만 개혁도, 공약 이행도 가능합니다. 이번만큼은 통합과 포용의 국정운영으로 우리 모두가 세계무대에서 민족의 저력을 펼치기를 기대합니다.
K-컬처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의 문화 역량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국력을 펼칠 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현실화하려면, 일상의 현장에서도 자긍심을 높이는 세심한 정책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오늘 저는 커피 산업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바탕으로 대통령께 간곡한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돈이 사람의 가치를 좌우한다는 그릇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통계청과 OECD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 5분위 배율(상위 20%와 하위 20%의 평균소득 차이)은 최근 5.4배 수준으로, OECD 평균(3.6배)보다 현저히 높습니다. 이와 같은 격차는 성실하게 일해도 정당한 대가를 받기 어려운 구조를 고착화하며, 사회적 약자의 무력감을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부와 학벌보다 헌신과 땀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커피 산업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K-커피’의 독립과 문화 주권 확립을 절실히 소망합니다. 국내 커피 시장 규모는 2023년 기준 약 8.7조 원(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자료)에 이르며, 한국은 세계 6위 커피 소비국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큰 시장을 갖고 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해외의 품질 기준과 브랜드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커피 챔피언십 행사는 미국의 민간단체(Specialty Coffee Association) 주관으로 진행됩니다. 막대한 예산을 들이고도 한국을 대표하는 바리스타를 외국 기준에 따라 선발해야 하는 현실은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국내 커피 브랜드나 업체조차 스스로 품질 기준을 세우기보다는 외국 기관의 점수에 기대는 풍토 속에서, 과연 우리만의 ‘커피 주권’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정부의 일자리 정책 역시 현장과 어긋나는 면이 있습니다. 학벌보다 직무 중심 역량을 중시하기 위해 도입된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제도는 본래 실무 능력 위주의 평가를 지향하지만, 커피 분야에서는 오히려 해외 민간 자격증 취득을 돕는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100만 원을 넘는 외국 자격증은 ‘전문가 인증’으로 통하지만, 수년간 현장에서 쌓은 실무 경력은 외면당하는 현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스스로 만든 기준이 아니라, 외국의 자격증과 브랜드에 자발적으로 종속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젊은이들은 값비싼 해외 자격증에 매달리고, 정작 현장에서 성실히 일한 경험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해 좌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교육과 콘텐츠 분야에서도 우리의 커피 문화와 경쟁력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이 문제의 본질은 단지 산업정책이 아니라 문화와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의 고유한 역량과 경험이 평가받는 제도를 구축해 주십시오. 정부가 앞장서서 K-커피의 브랜드와 교육 콘텐츠가 세계 무대에서 떳떳하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기반을 닦아 주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 자영업자의 5년 생존율은 30% 남짓에 불과합니다(중소벤처기업부, 2023). 그만큼 현장에서는 수많은 이들이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대형 프랜차이즈에 밀려 지역의 개성 있는 카페들이 사라지는 현실은 자영업자뿐 아니라, 우리의 문화 다양성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 것’을 사랑하는 국가적 캠페인이 필요합니다. 커피 한 잔에도 우리의 이야기가 담기고, 세계인에게 “K-커피는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도록, 문화적 자긍심을 정책으로 뒷받침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 커피인들은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대통령님께서 이 횃불을 들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