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권력의 환상에 안 빠지고, 인간 본모습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뽑혔으면…

나는 과거 사법시험 면접관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다. 당시의 주요 관심사는 지원자들이 법조인으로서 인품을 갖추었는지 여부였다. 네 명씩 조를 지어 주제를 던져주고 난상토론을 시켰다. 나는 그들의 태도와 자세를 세밀히 관찰했다. 자기를 과도하게 드러내는 사람, 남의 말꼬리를 붙잡고 공격하는 사람, 심지어 면접관을 의식해 연기하듯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들 중 진심이 조금이라도 드러나는 사람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다.
엊그제 대통령 후보 4명의 TV토론을 보며 그 기억이 떠올랐다. 주제는 사회갈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였지만, 후보들은 곧장 상대의 급소를 파고들며 날 선 공격을 주고받았다. 서로의 과거를 끄집어내고 목소리를 높이며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국민을 하나로 묶는 해법을 제시하긴커녕, 분열과 증오를 키우는 장면이었다.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퍼진 그들의 언어는 마치 감염병처럼 증오를 확산시키는 듯했다.
그들이 쏟아낸 말들은 과연 진심일까, 아니면 짜인 각본의 일부였을까. 나는 수십 년간 변호사로서 수많은 법정에 섰다. 법정은 겉으로는 진실을 밝히는 장소지만, 실제로는 거짓말이 오가는 싸움터였다. 한 원로 법관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재판을 하다 보면 토할 것 같은 순간이 있어. 법정은 진실을 밝히는 곳이 아니라 거짓말 경연장 같아. 부부, 부모자식, 형제가 나와 서로를 증오하면서 싸워. 그걸 보다 보면 인간에게 거짓말할 권리라도 있는 것처럼 느껴져.”
그의 말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내가 본 법정에서도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진짜와 가짜가 서로를 비난하며 소리쳤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쉽게 달라진다. 건달이 야구방망이를 들면 눈빛이 바뀌고, 평범한 친구가 국회의원이 되면 어조와 걸음걸이조차 변한다. 권력은 사람을 바꾼다. 금융회사에 다니던 한 친구는 검사 출신 친구의 냉대한 태도에 실망하며 이렇게 말했다. “고등학교 때는 같이 밥도 먹고 놀던 친구였어. 그런데 검사가 되더니 사람이 완전히 바뀌었더라구.”
그런 사례는 흔하다. 검사가 대통령 후보가 되면, 그리고 대통령이라는 왕관을 쓰게 되면, 사람의 본모습마저 잃을 수 있다.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정상에 오른 이들이 진짜 자신을 지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우리는 각자 사회 속 역할을 수행하며 무대의상을 입고 살아간다. 그리고 언젠가 그 배역에 매몰돼 인간다움을 잃는다.
토론에 나온 네 명의 후보를 바라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각 후보에게 대통령이라는 왕관을 씌워보았다. 그리고 스스로 묻는다. 이 중 누가 권력의 환상에 빠지지 않고 인간의 본모습을 지킬 수 있을까.
성경 속 모르드개는 왕의 옷을 입고 시가지를 행진하는 영광을 누렸지만, 곧바로 그 옷을 벗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런 인물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정책을 말하는 후보들의 표정을 보며 나는 그 중 누구에게 진심어린 갈망이 담겨 있는지를 가늠해 보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로 간 광부와 간호사들의 손을 잡고, 나라의 가난을 한탄하며 울었다. 또 어떤 대통령은 당선 직후, 거리의 시민들을 보며 “어떻게 저 사람들을 먹여 살리지?”라고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국민이 권력 앞에 무릎 꿇지 않게 하겠다”고 절절히 다짐했다. 이들은 관념이 아닌 실천을 통해 산업화와 민주화를 쌓아 올린 이들이다.
다음 대통령은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 신의 자리에 올라 남을 정죄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권력보다 진실을, 연극보다 인간다움을 택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