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업

‘제국의 장교’ 김경천 “나라를 지키는 길은, 먼저 사람을 지키는 일이다”

김경천과 지청천은 모두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지냈다.

시베리아 얼음 속에서 깨어난 이름, 김경천

1940년대 사직동 주변을 탐문하던 중, ‘김경천’이라는 이름과 마주했다. 대한제국의 장교였으며 러시아 백군 장군으로까지 활약했지만, 20세기 말까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김경천은 1998년 무렵, 감사원장 출신 정창영과 작가 이원규의 노력으로 세상에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시베리아의 동토에 묻혀 있던 이 무명의 독립군 장군은 그렇게 50여 년 만에 역사의 전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1919년 무렵, 김경천의 운명을 뒤흔든 것은 시대적 흐름이었다. 당시의 국내외 정세를 살펴보면 1945년 해방과 그 직후 좌우 갈등, 분단으로 이어지는 기점이 1919년 무렵부터 형성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조선 엘리트 장교 김경천이 왜 조국을 등지고 만주의 독립운동 전선으로 향하게 되었는지는, 그 시대의 격동을 이해할 때 비로소 명확해진다.

김경천 평전

세계대전과 민족 자결주의의 파고

1910년대 중반 이후 침체되었던 독립운동은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을 계기로 새로운 활기를 띠었다. 1917년, 러시아에서는 두 차례의 혁명으로 제정이 무너지고,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가 집권했다. 레닌은 제국주의 청산과 소수민족 해방을 선언했다. 같은 시기 미국 대통령 윌슨은 ‘민족자결주의’를 천명하며 식민지 민족들에게 독립의 환상을 심어주었다.

이런 국제정세 속에서 많은 조선의 지식인들은 러시아와 미국의 이상주의적 담론에 공명하며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에 눈을 떴다. 김경천 역시 그중 하나였다. 일본 육사에서 촉망받던 젊은 장교였지만, 그 역시 식민지 조국의 미래에 대한 고민 끝에 결단을 내린다.

망명과 독립 전선으로의 전환

1918년 9월, 김경천은 병가를 내고 조선으로 귀국한다. 형식은 병가였으나 실제로는 망명을 준비하기 위한 귀국이었다. 그는 사직동 잣골에 은거하면서 유학 동기이자 민족운동가들과 접촉했다. 윤치호, 이상재, 최린, 윤치성 등과의 교류가 이어졌고, 대부분은 그에게 결단을 응원했다. 그러나 윤치호는 일기에 “물을 수 있을 때까지 짖지 마라”고 기록하며 신중한 처신을 조언했다.

1919년 3월 1일, 경성 시내에서 울려 퍼진 대한독립 만세 소리를 들은 김경천은 마침내 결단을 내린다. 그는 독립운동 전선에 투신하기로 마음을 굳힌다. 그의 후배이자 훗날 광복군 총사령관이 되는 지청천(이청천)도 같은 시기 귀국해 망명을 준비했다. 두 사람은 경복궁 담장을 사이에 둔 집에서 비밀리에 만나 탈출을 모의했다. 이강 왕자(고종의 아들)도 두 사람을 성북동 별궁으로 불러 “독립 전선에서 다시 만나자”고 당부했다.

지청천 장군

탈출과 시베리아로의 여정

1919년 6월 6일, 김경천과 지청천은 변장한 채 경성을 빠져나와 수원으로 이동한 뒤, 신의주로 향하는 열차에 오른다. 신의주에서 만주 안동(단동)으로 이동한 후에는 보름 넘게 도보로 걸어 서간도 삼원보의 신흥무관학교에 도착한다. 일본군 장교 출신 두 사람의 탈출은 독립운동 진영에 큰 고무가 되었고, 조선총독부와 조선군 사령부에는 충격을 안겼다.

김경천과 지청천은 신흥무관학교에서 교관으로 활동하며, 청년들에게 군사 지식을 전수했다. 구한말 병조판서 신헌의 손자 신팔균(신동천), 중국 운남육군강무당 출신 이범석(철기) 등과 함께 훈련에 나섰다. 이들은 ‘하늘 천(天)’ 자를 이름에 나란히 쓴 삼천(三天)이라 불리며 독립군의 초석을 다졌다.

김경천의 생애는 이후 러시아 백군 장성으로 전투를 지휘하다 시베리아 혁명 와중에 극동에서 전사하기까지, 비극과 영웅담이 교차하는 장편 서사로 이어진다. 그는 오랜 세월 무명의 독립운동가로 남았지만, 냉전의 장막이 걷히고 러시아 자료가 공개되면서 그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오늘날 그는 무장 독립운동의 선두에서 싸운 인물로 재조명받고 있다. 일본 육사 수석 졸업생에서 조국 독립을 위한 망명 군관으로의 길. 김경천의 선택은 오늘날에도 뚜렷한 물음을 던진다.

“나라를 지키는 길은, 먼저 사람을 지키는 일이다.”

이택순

전 경찰청장, '이택순의 실크로드 도전기' 저자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본 광고는 Google 애드센스 자동 게재 광고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합니다.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