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정치사회세계칼럼

[중팔선생의 고금인생] 푸틴의 담요

APEC 기간인 11월10일 저녁 베이징의 폭죽 공연장. 푸틴 러시아대통령이 시진핑 부인 펑리위안의 어깨에 담요를 걸쳐 줬다. 그 직전에 말을 걸었다 한다. 어느 나라 말로 무슨 말을 했을까? 한 나라 대통령이 담요 들고 다니는 게 뭐 그리 즐겁겠는가. 그 자체가 쑥스럽기도 할 테고.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자니 낯 뜨겁고. 그런데도 왜 했을까. 그 행동에 푸틴의 말이 들어 있었다.

푸틴은 외국어에 재능이 있다고 한다. 외국어 잘 하는 계기 가운데 전쟁도 그 하나다. 프랑스의 알사스 로렌은 독일어로는 에르자스 로트린겐이다, 두 나라 국경지대에 있다. 싸워서 서로 뺏고 빼앗겼다. 그러면 국적은 몇 개인가. 국어는 어떻게 되나? 생존하려면 두 나라 말 배우지 않고는 못 배긴다.

알베르토 슈바이처 박사가 바로 그런 경우다. 태어날 때는 독일인. 커서는 프랑스인. 모국어가 둘이다. 두 언어를 모두 잘 한다. 그가 프랑스 말과 독일 말을 비교한 적이 있다. 두 언어에 대한 평가가 상반된다. 프랑스는 평야의 나라로 확 트였다. 멀리서 적군이 침략해 온다면? 홍수가 나서 강물이 둑을 넘어 쏟아져 내려온다면? 그 상황을 제 눈으로 직접 다 본다. 눈이 위험 발견 기능을 수행한다. 자연스레 시각이 발달한다. 사물을 보는 기량에 좌우되는 미술에서 특히 재능을 발휘한다. 언어도 훤히 트인 들판처럼 거칠게 없다. 다 보이듯 명료하고 논리적이다. 외교문서의 정본(正本)에 제격이다. 오독(誤讀)을 방지한다.

메르켈(54년생) 독일수상은 구소련 시절 대학생 때 모스크바에서 러시아어를 배웠다. 푸틴(52년생)은 KGB 동독지부에서 근무할 때 독일어를 마스터했다. 메르켈과 푸틴은 독일어와 러시아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회의나 회담에는 기록을 위해 통역사를 배석시킨다. 통역이 틀리거나 머뭇거리면 두 사람이 바로잡아 주곤 한다. 소련. 러시아. 그리고 푸틴은 서방에게 미운 털이다. 작년에는 메르켈에게 담요 공세 폈다. 두 사람은 말이 통하는 사이다. 푸틴은 메르켈에게는 속내를 내비친다. 메르켈은 푸틴 입장을 대변도 해준다. 추운 곳 사람이라 따뜻한 지역이 그리운가. 모포로 표현하는 듯하다.

말은 소통의 한 수단이다. 어학공부는 왜 하는가. 소통하기 위해서다. 커뮤니케이션이라고들 한다. 납득이 목표다.

내 뜻을 전하고 상대방 의사를 알려고 하는 거다. 자국어나 외국어나 마찬가지다. 말이 유창하다 해서 그거 하나로 그 사람을 택하지 않는다. 그대로 믿지도 않는다. 언어는 수단이기 때문에 말하는 이의 진실함을 보여주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사람 됨됨이는 남들이 보지 않는 듯하지만 다 지켜보고 자기 마음에 담아 둔다. 인연도 짧은 인연, 좋은 거 없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인연이 길면 달고 쓴 경험은 이미 다 거친 뒤다. 이런 게 정품 인간관계다. 그럴 때 그 사람 찾게 된다.

이렇게 세상을 살다 보면 서로 잊고 살아갈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함께 도모할 계제는 꼭 오기 마련이다. 그때 부른다. “같이 하자. 이거 좀 맡지 그래!” 그게 인생이다.
말에는 삶을 불어 넣어야 한다. 재미 있어도 좋고 서글픈 내용이면 어떤가. 거기에 진실이라는 생명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서로 믿게 되고 관계는 오래 간다.

김중겸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부총재, 이실학회 창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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