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식농부’ 박영옥, 지분 일부 매각에도 “2대 주주로서 책임 다할 것”
자사주 46%대·해외 투자자산 수천억원…주주환원과 지배구조 놓고 대립
20년 동안 한 기업의 주식을 보유해 온 투자자가 지분 일부를 팔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회사와의 관계를 끝내겠다는 뜻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기업이 제대로 평가받고 주주들이 성과를 공유하는 날까지 책임을 다하겠다고 한다.
‘주식농부’로 알려진 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와 조광피혁의 갈등이다. 박 대표는 “나는 조광피혁의 미래를 보고 투자했다. 조광피혁과 싸우려고 투자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주주로서 끝까지 조광피혁이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는 존경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가 조광피혁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은 2006년 11월이다. 2011년에는 지분 5% 이상을 확보했고, 2013년에는 10%를 넘는 주요 주주가 됐다. 그가 회사에 기대했던 것은 단순한 주가 상승만이 아니었다. 피혁 가공이라는 전통 제조업의 경쟁력을 활용해 새로운 산업으로 성장하고, 장기적인 투자 성과를 주주들과 공유하는 기업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이어진 장기투자는 경영진과의 갈등이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았다.
“9차례 주주총회 참석했지만 대표는 만나지 못했다”
박 대표는 자신이 2008년부터 2025년까지 모두 아홉 차례 주주총회에 직접 참석했다고 밝혔다. 직접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대리인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 이연석 대표와 지길순 회장을 주주총회에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 번이라도 만나서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박 대표에게 주식투자는 단순히 가격이 오르면 팔아 이익을 남기는 행위가 아니다. 좋은 기업을 찾아 장기간 함께 성장하고, 필요한 경우 경영진에 조언하고 견제하면서 기업의 성과를 나누는 일이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로 올라와 피혁가공업과 유사한 제조업 현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이러한 경험은 조광피혁의 사업 가능성을 평가하는 배경이 됐다.
소가죽이라는 원재료를 활용해 신발과 의류, 가방, 자동차 시트, 건축 내장재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단순한 전통 제조업이 아니라 기술과 디자인을 접목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소재산업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박 대표가 기대했던 방향과 회사의 실제 사업전략은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졌다.
조광피혁…피혁회사인가, 투자회사인가
현재 조광피혁을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회사가 보유한 자산의 구성이다. 박 대표가 2026년 1월 회사에 보낸 주주서한에 따르면, 2025년 3분기 말 조광피혁의 전체 자산은 약 6,418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피혁 제조에 투입된 유형자산은 약 177억원으로 전체의 2.8% 수준이었다.
반면 버크셔해서웨이 약 3,024억원, 애플 약 1,142억원을 비롯한 비영업 투자자산은 약 5,855억원으로 분석됐다. 이 수치는 박 대표 측이 분류한 비영업 투자자산 기준이다. 피혁 제조업체로 출발한 조광피혁은 이제 어떤 기업으로 평가받아야 하는가. 전통적인 제조기업인가. 아니면 제조업과 함께 해외 우량주에 장기 투자하는 자산운용형 기업인가.
박 대표는 한때 조광피혁이 본업의 경쟁력을 지키면서 워런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처럼 장기투자를 병행하는 기업이 되기를 기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혁사업의 비중이 축소되고 금융투자자산의 비중이 커지면서 회사의 미래를 판단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금융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기업이 축적한 자산이 어떤 전략에 따라 운용되는지, 그 성과가 주주들에게 어떻게 돌아가는지가 핵심이다.
자사주 46%대, 주주환원 논쟁의 중심에 서다
조광피혁은 자기주식 보유 비율이 매우 높은 기업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2026년 초 보도에 따르면 조광피혁의 자사주 보유 비율은 전체 발행주식의 약 46.57%에 달했다. 박 대표는 이 자사주를 단계적으로 소각하고 배당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기업이 벌어들인 성과와 축적한 자산의 가치를 주주들이 적절하게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다.
자사주는 회사가 취득한 자기 회사의 주식이다. 일반적으로 보유 중인 자사주에는 의결권이 없으며, 소각하면 발행주식 수가 감소한다. 자사주 소각은 다른 조건이 같다면 남아 있는 주식의 지분율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소각 자체가 기업의 영업실적이나 현금흐름을 개선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투자계획과 재무상태, 주주구성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조광피혁을 둘러싼 쟁점도 여기에 있다. 박 대표는 높은 자사주 비중과 투자자산의 규모를 고려할 때 주주환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반면 회사 측은 경영의 안정성과 자산운용 판단, 주주의 요구가 정당한 목적에 따른 것인지 등을 문제 삼고 있다.
양측이 같은 기업을 바라보면서도 기업가치와 주주권에 대해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내부거래 의혹 놓고 법적 분쟁…회사 측은 반박
양측의 갈등은 계열사 거래를 둘러싼 의혹으로도 확대됐다. 박 대표 측은 이연석 대표가 지배하는 회사 ‘조광’과 조광피혁 사이의 거래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관련 자료의 확인을 요구했다.
2022년에는 박 대표가 운영하는 스마트인컴을 포함한 주주들이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조광피혁 측의 설명은 다르다. 회사는 법원이 선임한 검사인의 조사에서 조광이 실제 인력과 시설을 갖추고 가죽 재단·검사·포장 등의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부당한 이익 제공을 뒷받침할 사정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광피혁은 박 대표 등이 제기한 거래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2025년 박 대표가 제기한 회계장부열람등사 가처분 신청도 법원에서 기각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회사 측은 박 대표의 주식 거래와 지분 보유 목적을 둘러싼 문제도 제기해 왔다. 박 대표 측은 이에 대해 자신의 주주권 행사와 기업가치 제고 요구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다.
12.67%에서 11.62%로…매각은 결별인가
박 대표의 최근 지분 매각은 양측 관계의 새로운 변수가 됐다. 10월 27일 보도된 공시에 따르면, 박 대표와 특별관계자인 스마트인컴의 조광피혁 보유 지분은 10월 19일 기준 기존 12.67%에서 11.62%로 낮아졌다.
박 대표는 10월 14일부터 11월 12일까지 자신의 보유 주식 19만9,474주를 장내에서 매도하는 계획도 공개했다.
투자자는 보유 주식을 팔 수 있다.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을 믿고 투자했더라도, 시간이 지나 투자 가설이 달라졌다면 투자 규모를 조정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박 대표는 일부 지분 매각이 회사와의 완전한 결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함께할 수 없다면 엑시트해야 한다”면서도 “조광피혁이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때 평생 동행하고 싶은 기업으로 생각했던 회사와의 관계가 달라진 데 대한 아쉬움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20년 장기투자가 남긴 질문
조광피혁을 둘러싼 갈등은 단순히 한 투자자와 한 기업 경영자의 대립으로만 볼 문제가 아니다. 기업이 상장된 뒤에도 지배주주가 경영의 주도권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상장회사의 자산과 이익은 지배주주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법인에 귀속된다. 다른 주주들 역시 보유 지분에 따라 법이 정한 권리를 가진다.
반대로 지분을 많이 보유한 투자자라고 해서 자신의 요구를 모두 관철할 권리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경영진의 판단을 비판하고 자료를 요구하는 일은 정당한 주주권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제기한 의혹에는 근거가 필요하다.
조광피혁 사례가 던지는 질문은 결국 이것이다. 좋은 기업을 골라 오랫동안 투자하는 사람과 기업을 실제로 경영하는 사람은 어떤 관계여야 하는가.
투자자는 기업이 성장하기를 바라고, 경영자는 장기적인 전략을 세워 기업가치를 높여야 한다. 두 주체가 서로를 적대적인 존재로만 인식한다면 장기적인 신뢰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박 대표는 “주식은 단순히 사고파는 머니게임이 아니라 좋은 기업의 주인이 되어 함께 성장하고 성과를 공유하는 행위”라는 투자철학을 강조해 왔다.
그가 조광피혁에 투자한 지 20년이 흘렀다. 그 기간에 회사의 자산구조가 달라졌고, 주주환원과 지배구조를 둘러싼 갈등도 깊어졌다. 박 대표는 지분 일부를 매각하기 시작했지만 회사가 존경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조광피혁의 향후 경영전략과 주주환원 정책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이 사례는 한국 자본시장에 오래된 질문 하나를 다시 던진다.
“주식회사의 주인은 누구이며, 기업의 성과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