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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아이반 림 싱가포르 스트레이트타임즈 전 선임기자] 인도네시아 산림 화재에 따른 연무가 확산되면서 싱가포르가 관련 기업을 직접 제재할 것이라 밝혔다. 이에 인도네시아 ‘주권 침해에 가까운 일방적 통보’라 반발하며 양국의 외교 갈등이 불거졌다.연무의 주된 원인은 인도네시아 목재·팜유 개간지에서 벌어지는 화전 방식의 토지 정리 작업이다. 이 같은 방식은 산불을 유발하는데, 이때 발생하는 유독한 연기가 계절풍을 타고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등지로 번지고 있다.
이번 갈등은 아세안 내부의 정치적 역학을 낱낱이 드러냈다. 2027년 아세안 순회의장국을 수행하는 싱가포르는 역내 외교적 존재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의지를 내비쳤다.
국제정세 전문가들은 이 사태에 대해 아세안 내에서의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의 입지와 연관이 있다고 지적한다. 인도네시아는 전통적으로 아세안의 ‘아방'(형)을 자처해 왔으며, 싱가포르와 같은 ‘아덱'(동생) 회원국으로부터 이에 상응하는 대접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과거 인도네시아의 한 전직 대통령이 싱가포르를 ‘작고 빨간 점’이라 칭한 적도 있다.
이러한 역학관계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 정부는 연무로 인해 국민의 건강이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자 강경 대응에 나섰다. 지난 10월 초 싱가포르의 대기오염지수(PSI)가 건강 위해 수준인 200을 넘어서자, 야권을 비롯한 국민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그동안 싱가포르 정부는 월경성연무오염법(THPA)에 따라 인도네시아 기업들을 기소하려 했으나, 증거 수집과 가해자 특정의 어려움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었다.
10월 19일 싱가포르 정부는 법적·규제적·경제적 수단을 개정해 책임 기업과 관계자들을 강력히 단속하겠다고 발표했다. K. 샨무감 싱가포르 내무부 장관 겸 국가안보조정장관은 “우리 국민이 (연무로) 고통받고 있다”며, “싱가포르는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더 이상 움츠러들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이에 따라 싱가포르 국가환경청은 THPA에 근거해 산불과 연관된 인도네시아 기업 10곳에 화재 진압과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법적 서한을 발송했다.
10월 22일 인도네시아 정부는 ‘싱가포르의 월권’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특히 바흘릴 라하달리아 인도네시아 에너지광물자원부 장관은 “우리를 존중하지 않는 국가에게 에너지 수출을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정 국가를 지목하지는 않았으나, 싱가포르가 인도네시아의 주요 가스 수입국인 만큼 메시지는 분명했다. 그리고 10월 24일, 인도네시아는 국내 수요 충당을 명분으로 싱가포르행 천연가스 공급을 감축했다.
이와 관련해 로렌스 웡 싱가포르 총리는 “모든 당사자가 계약상 약속을 이행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싱가포르 가스 수입업체는 계약에 따른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라하달리아 장관은 “우리에게 계약 이행을 설교하지 말라”며, “감축은 계약상 허용된 최소 범위 안에서 이뤄졌다”고 응수했다. 그는 싱가포르와 갈등이 영향을 미쳤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갈등은 없다”고 일축했다. 이에 탄시렁 싱가포르 에너지통상산업부 장관은 인도네시아의 감축을 ’에너지 민족주의의 징후’라 규정하며, 에너지원 다변화를 가속화할 것이라 밝혔다.
전문가들은 아세안 이웃나라의 힘겨루기가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재편이라는 큰 그림과 맞물려 있다고 보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또한 경제 위기에 따른 국가신용도 문제, 대규모 반정부 시위 등 전방위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 기관 MSCI가 인도네시아의 시장 지위를 ‘신흥시장’에서 ‘독립시장’으로 강등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외국인 투자유치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먼저 손을 내민 것은 싱가포르였다. 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싱가포르 외교장관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아르마나타 나시르 인도네시아 외교장관,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 등과 잇따라 회동하면서 양국이 공조에 나서는 모양새다. 양국은 10월 27일 설립된 공동 태스크포스를 통해 월경성 연무를 유발하는 기업에 대해 공동으로 책임을 묻기로 합의했다. 아울러 고위관리급 핫라인을 설치해 지속적인 소통을 이어가기로 뜻을 모았다.
상대를 향한 거친 언사도 외교적 표현으로 정제됐다. 아르마나타 나시르 장관은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의 관계는 서로 간의 이견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졌다”며,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건설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발라크리쉬난 장관도 “인도네시아가 문제를 원활히 해결하길 바란다. 우리의 미래는 함께 엮여 있다”고 화답했다.
아시아엔 영어판 : Transboundary Haze Tests Singapore-Indonesia Ties – THE Asi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