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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의 나고야 산책] 금빛 병풍 앞에서 은을 생각하다

나고야시박물관 특별전에 전시된 「太閤花見図屏風」. 왼쪽 병풍에서 꽃놀이를 하는 세 인물 가운데 가장 오른쪽 인물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수리 중인 나고야시박물관에서 특별전 「나고야에는 히데요시가 있다-히데요시와 오와리의 역사」를 보았다. 나고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태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고향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시기에 히데요시를 주제로 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는 것이 나고야시의 작은 배려처럼 느껴졌다.

    전시물 가운데 조총이 있었다. 관람객이 직접 만져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들어보니 생각보다 무거웠다. 문득 이 조총을 수천, 수만 자루 준비해 병사들에게 나누어주고 화약과 탄환까지 공급하려면 얼마나 많은 물자와 돈이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전에 전시된 조총. 관람객이 직접 들어보며 무게를 느낄 수 있도록 마련됐다.

    전시를 보다가 히데요시가 일본의 동쪽을 정벌했다는 설명을 만났다. 오다와라 정벌을 거쳐 일본을 통일한 뒤였다. 궁금했다. 국내의 여러 전쟁을 치르면서 인적·물적 자원이 소진되었을 터인데, 어떻게 다시 대군을 만들어 조선으로 건너가고, 더 나아가 명나라까지 정벌하겠다는 계획을 세울 수 있었을까.

    군대는 칼과 총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병사가 먹어야 하고, 화약과 무기가 있어야 한다. 그것을 실어 나를 배와 수레도 필요하다. 전쟁의 규모가 커질수록 전투만큼이나 보급이 중요해진다.

    롬멜의 전차부대가 떠올랐다. 전차가 아무리 많아도 연료가 떨어지면 움직일 수 없다. 적의 전차가 없더라도 연료가 없으면 전투는 끝난다.

    임진왜란의 일본군도 그러했을 것이다. 조선에 상륙한 병력에게는 계속해서 식량과 무기, 증원군이 필요했다. 이순신의 수군이 일본의 해상 수송을 위협한 것은 단순히 배 몇 척을 격파한 일이 아니라, 일본 본토와 조선의 전선을 연결하던 보급망을 흔든 일이었다.

    특별전에 전시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좌상.

    그렇다면 히데요시는 그 거대한 전쟁을 치를 재원을 어디에서 마련했을까. 나는 은을 생각했다.

    일본에는 이와미 은산을 비롯한 여러 은광이 있었다. 특히 16세기 이와미에서는 회취법이라는 은 제련 기술을 이용해 은 생산량이 크게 늘었다. 이 기술의 계통은 중국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전해진 것으로 설명된다. 1533년 하카타의 상인 가미야 주테이가 기술자들을 이와미 은산으로 데려와 회취법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은 생산이 급격히 증가했다.

    그런데 뜻밖의 사실이 있었다. 그 제련 기술은 일본에서 처음 생긴 것이 아니었다.

    조선에서는 1503년 연산군 때 김감불과 김검동이 납에서 은을 분리하는 연은분리법을 개발했다. 은을 함유한 납광석에서 은을 효율적으로 얻어내는 기술이었다. 이 기술은 단천을 비롯한 여러 은광의 개발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조선은 새로운 기술을 얻었다고 해서 은광을 무조건 개발하지는 않았다.

    은 생산이 늘어나는 것이 반드시 국익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중국으로 은이 유출되는 것을 우려했고, 명나라와의 조공 관계에서도 부담이 될 수 있었다. 한편 국제무역의 발달로 은의 수요가 커지면서 은광 개발을 둘러싼 정책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조선의 은광 정책은 일관되지 않았다.

    여기서 잠시 생각이 멈췄다. 기술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였다.

    조선에서는 은 생산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는 데 외교적·정책적 제약이 있었다. 반면 일본에서는 은광과 제련 기술, 상업 자본과 무역이 결합했다. 이와미에서 생산된 은은 일본 각지로 퍼졌고 동아시아의 무역망으로 흘러갔다. 유네스코는 이와미의 대량 은 생산이 16~17세기 일본과 동아시아의 경제 발전과 상업·문화 교류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한다. 같은 기술도 그것이 놓인 환경에 따라 다른 결과를 만들었다.

    나는 다시 전시장으로 돌아왔다. 여섯 폭 병풍 두 점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太閤花見図屏風」이었다. 왼쪽 병풍에는 꽃놀이를 하는 세 사람이 그려져 있고, 그 가운데 가장 오른쪽 인물이 히데요시로 설명되어 있었다.

    금빛이었다. 히데요시는 금빛 속에 앉아 있었다.

    조금 전 손으로 들어본 조총이 떠올랐다. 그 한 자루의 무게도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것을 수천, 수만 자루 준비하고 병사와 화약과 식량을 함께 움직이는 데 필요한 경제적 무게는 얼마나 컸을까. 나는 그 무게를 은으로 생각해 보았다.

    은은 땅속에 있었다. 그것을 캐내고, 광석에서 분리하고, 운반하고, 교환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군대를 움직이는 돈이 되었다.

    전쟁은 칼과 총으로 시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뒤에는 광산이 있고, 세금이 있고, 쌀이 있고, 배가 있고, 길이 있다. 그리고 기술이 있다.

    조선에서 개발된 은 제련 기술은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갔다. 일본에서는 그것이 은광과 상업의 힘과 결합해 대량 생산의 체계로 발전했다. 그리고 수십 년 뒤 일본의 군대는 다시 바다를 건너 조선으로 왔다.

    나는 금빛 병풍을 한참 바라보았다. 금빛을 바라보다가, 그 금빛 뒤에 있었을 은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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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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