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한 사람이 말했다. “과거의 그 학교도 우리 것이고, 현재의 그 학교도 우리 것이며, 미래의 그 학교도 우리 것이다.” 좋은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듣는 순간 당나라 덕산 스님과 떡 파는 노파 이야기가 떠올랐다. 《금강경》에 밝았던 덕산이 길을 가다 떡을 사려 하자 노파가 물었다. “스님, 《금강경》에는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했지요?”
덕산이 그렇다고 하자 노파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어느 마음에 점을 찍어 떡을 드시겠습니까?” 덕산은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그 노파의 등 뒤에 서고 싶어졌다. 그 사람은 또 말했다. “변하려면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고, 변하지 않으려면 변해야 할 것도 있다.” 이 역시 좋은 말이다. 그렇다면 노파는 다시 물을 것이다.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바꾸지 않겠습니까?”
과거의 학교도 우리 것이고 현재의 학교도 우리 것이며 미래의 학교도 우리 것이라면, 세 시대를 하나로 묶는 것은 무엇인가. 이름인가. 장소인가. 건물인가. 제도인가. 아니면 그 모든 것이 달라져도 끝내 지켜야 할 정신인가.
《금강경》은 말한다.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
과거를 말하는 것도 지금이고, 미래를 말하는 것도 지금이다. 현재라고 말하는 순간조차 이미 지나간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과거·현재·미래를 모두 우리 것이라 선언하는 일이 아니다. 무엇을 이어받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새로 만들 것인가를 지금 답하는 일이다.
노파가 다시 떡 하나를 든다. “그래서 어느 마음에 점을 찍으시겠습니까?” 나는 여전히 노파의 등 뒤에 서 있다. 그 대답을 듣기 위해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