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연천 유엔군 화장장…천국으로 가는 마지막 정류장

연천 유엔군 화장장 시설 <사진 황건>

오늘 혼자 연천에 갔다. 찾아간 곳은 유엔군 화장장 시설이었다. 이름부터 조금 낯설었다. 전쟁기념관도 아니고, 현충원도 아니었다. 누군가의 이름을 크게 새겨놓은 추모비도 없었다.

산자락 아래에 논이 보이고, 숲은 여름빛으로 짙었다. 이렇게 평온한 곳에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는 쉽게 믿기 어려웠다. 조금 걸어 들어가자 건물터가 나타났다. 거의 무너져 있었다. 벽은 군데군데 끊어졌고 지붕은 사라졌다. 세월이 건물을 하나씩 지워버린 것 같았다.

그런데 하나 남은 것이 있었다. 굴뚝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정면에서 바라보았다. 이상했다. 굴뚝인데 굴뚝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기념탑 같았다.

주변에서 구한 돌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쌓아 올린 막돌 허튼층쌓기였다. 돌마다 모양도 크기도 달랐다. 그런 돌들이 서로 기대어 벽이 되었고, 그 벽 위로 굴뚝이 하늘을 향해 솟아 있었다. 굴뚝 꼭대기에는 쇠로 만든 삼발이 같은 구조물이 남아 있었다. 아마 연기가 한곳에 머물지 않고 흩어지도록 만든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굴뚝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아궁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꽃이 하나 놓여 있었다. 처음에는 생화인 줄 알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조화였다. 자유연맹 동두천지부에서 보내온 꽃이었다.

누군가 이곳에 꽃을 놓고 갔다. 그런데 꽃은 밖에 놓여 있지 않았다. 비를 피하려는 듯 죽은 사람의 몸이 들어갔을 아궁이 안에 놓여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 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문득 카메라를 아궁이 안으로 넣어보았다. 거꾸로 넣어 찍었다. 사진을 확인해 보니 꽃 너머로 네모난 구조가 보였다. 연돌이었다. 그제야 이곳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한국전쟁 당시 이곳은 전사한 유엔군의 시신을 화장하던 곳이었다. 한때 사람들의 몸이 태워졌다. 전쟁터에서는 사람이 죽는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기 전이라도 죽은 사람은 다시 집으로 보내야 한다. 살아서는 각자의 나라에서 왔지만 죽어서는 이곳까지 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한 사람의 몸에서 뼈만 남았을 것이다.

살아 있을 때 그 몸에는 이름이 있었고, 가족이 있었고, 고향이 있었고, 돌아가야 할 집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 앞에서는 모두 같은 몸이 된다. 불은 군복을 태우고, 살을 태우고, 남아 있던 흔적들을 하나씩 없앤다.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뼈다.

누군가는 그것을 수습했을 것이다. 작은 유골함에 담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먼 길을 떠났을 것이다. 아마 그 유골함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였을 수도 있고,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였을 수도 있고, 아버지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였을 수도 있다.

그들은 아마 그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어떻게 떠났는지는 몰랐을 것이다.

나는 다시 굴뚝을 올려다보았다. 문득 오래전 보았던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마이클 파월과 에머릭 프레스버거의 《A Matter of Life and Death》였다. 영화 속에서는 죽은 자가 하늘로 올라가는 거대한 계단이 나온다. 살아 있는 세계와 죽은 세계 사이를 오가는 통로다.

오늘 내가 서 있던 곳에도 그런 통로가 있었을까. 전쟁터에서 삶을 떠난 젊은 병사들은 이곳에서 육신마저 떠나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남은 뼈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은 단순한 죽음의 장소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마지막 귀환의 장소였을지도 모른다.

건물은 거의 사라졌다. 벽도 무너졌다. 사람들은 이곳을 잊어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굴뚝 하나는 남았다. 정면에서 보면 기념탑처럼 보이는 그 굴뚝.

나는 그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돌아 나오기 전에 다시 아궁이를 보았다. 그 안에는 여전히 조화가 있었다. 생화가 아니어서 오래 남아 있을 꽃. 비를 맞지 않도록 아궁이 안에 놓인 꽃.

나는 그 꽃을 바라보다가 문득 70여 년 전 이곳을 지나갔을 젊은이들을 생각했다. 그들도 아마 이곳에 오래 머물지는 않았을 것이다. 불이 꺼지고, 뼈가 수습되고, 그들은 다시 길을 떠났을 것이다. 아무도 그들이 이곳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오늘도 누군가는 꽃을 가져온다.

연천 유엔군 화장장 <사진 황건>

그리고 나는 오늘 혼자 그곳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숲 사이로 굴뚝 하나가 보였다. 마치 아직도 무언가를 하늘로 보내고 있는 것처럼.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화장장은 죽음의 끝이 아니라 천국으로 가는 마지막 정류장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떠나도 그 사람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은 때로 우리에게 남는다. 그리고 어떤 곳은 우리가 그곳을 기억하는 동안만큼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연천 유엔군 화장장 소개문 <사진 황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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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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