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일본에선 ‘역사의 문제’, 한국에선 ‘소관 부처 문제’…’시베리아 억류 민원’ 행안부·외교부·재외동포청 핑퐁게임

AI 생성 이미지

2월18일 청원 접수 뒤 외교부·행안부·재외동포청 ‘핑퐁’…3월 23일 다시 외교부 담당자 배정
재외동포청→행안부→외교부는 불과 15시간10분…피해자 유족 “20년째 국가의 답 기다려”

8월 23일 일본 도쿄 국립 지도로가후치 전몰자묘원. 일제 말기 강제동원된 뒤 소련에 억류됐던 고 문순남씨의 아들 문용식씨가 ‘제24회 시베리아·몽골 억류희생자 추도의 모임’에서 한국 유족 대표로 추도사를 했다.

한국 유족이 이 행사에 참석한 것은 15년 만이었다. 일본의 억류 생존자와 유족, 후생노동성 관계자 등이 참석했고 신문과 방송 기자들도 현장을 취재했다. 추도식 뒤 열린 토크세션에서는 대만의 101세 억류 생존자 우정난씨와 문씨가 일본측 피해자와 함께했다.

81년 전 전쟁과 억류의 기억을 일본에서는 정부 관계자와 생존자, 유족, 언론이 한자리에서 듣고 기록했다.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온 문씨가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 그가 지난 2월 18일 청와대에 낸 시베리아 억류 문제 관련 청원은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재외동포청 등을 오가다 한 달여 만에 다시 외교부로 돌아왔다. 문씨는 “일본에서는 한국인 유족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록하려 하는데, 정작 우리 정부에서는 어느 부처가 맡을 것인지를 놓고 민원이 계속 돌아다녔다”고 말했다.

문용식씨 작성 정부 핑퐁 일지

2월18일 청와대 접수…2월25일 외교부 최초 담당자 배정

문씨가 <아시아엔>에 제보한 ‘청원24’ 알림과 이송 통보 내용을 시간순으로 보면 민원이 어떻게 움직였는지가 드러난다.

문씨는 2026년 2월 18일 ‘한 많은 구소련 억류 피해자 문제 해결해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을 청와대에 접수했다. 문씨의 청원은 처리기한이 법률상 90일이어서 5월 19일까지로 표시돼 있었다고 한다.

2월 25일 오후 3시50분, 청원 담당자가 배정됐다는 통보가 왔다. 이어 청원은 다른 중앙행정기관으로 이송되는 절차를 밟았다. 문씨가 받은 별도 기록에는 2월 25일 오후 5시50분 외교부 감사관실로 이첩된 내용도 남아 있다.

3월18일 다시 이송…하룻만에 재외동포청서 행안부로

청원24 기록에는 3월 18일 오후 4시40분, 민원이 다시 다른 중앙행정기관으로 이송된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튿날인 3월 19일 오후 6시10분, 재외동포청은 이 민원을 행정안전부로 다시 보냈다.

재외동포청은 이송 사유에서 “이송 사유의 연관성을 검토했으나 재외동포청 소관 사안으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청원 내용에는 한일청구권협정 해석과 대외관계, 국제법적 검토가 포함돼 있어 관계 부처의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며 재외동포청의 업무 범위를 벗어난다는 판단이었다.

문씨가 제기한 시베리아 억류 문제가 단순한 ‘재외동포 민원’으로 처리될 수 없다는 점을 재외동포청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15시간10분 뒤 행안부서 다시 외교부로

그런데 행정안전부에 도착한 민원은 그곳에도 오래 머물지 않았다.

3월 20일 오전 9시20분. 재외동포청이 행안부로 민원을 넘긴 지 불과 15시간10분 뒤,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은 이 청원을 다시 외교부로 이송했다.

행안부는 청원인이 해당 문제를 외교부에 여러 차례 제기해왔고 국제법 위반 문제를 주장하고 있으며, 행안부와 재외동포청으로 이송된 데 대해 강한 이의를 제기했다는 점 등을 이송 사유로 들었다.

결과적으로 문씨의 민원은 다시 외교부로 돌아왔다.

2월 18일 청원 접수 → 2월 24일 담당자 배정 → 2월 25일 외교부 감사관실 이첩 → 3월 18일 다른 중앙행정기관으로 재이송 → 3월 19일 재외동포청에서 행안부로 이송 → 3월 20일 행안부에서 외교부로 재이송.

문씨가 말한 ‘핑퐁 민원’의 실제 경로다.

3월31일, 다시 외교부 담당자 배정

민원은 3월 31일 오전 11시40분 다시 외교부 담당자에게 배정됐다. 청원을 처음 접수한 2월 18일부터 따지면 40여 일이 지난 뒤였다. 한 달 넘게 여러 기관을 거친 민원이 결국 다시 외교부에서 담당자를 만난 것이다.

문씨는 “행안부에서 외교부로, 외교부에서 다시 다른 기관으로 갔다가 결국 외교부로 돌아왔다”며 “부처를 옮겨 다니는 동안 시간만 흘렀다”고 말했다. 그는 최종 처리결과 회신이 6월 10일 오후 6시에 이뤄졌다고 했다. 청원24에 당초 표시돼 있던 처리기한 3개월(5월 18일)보다 늦은 시점이다.

문씨는 “처리가 늦어지는 이유나 앞으로 언제까지 처리하겠다는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회신 내용 물으려 최소 6차례 전화…한 번도 통화 못 해”

문씨가 문제 삼는 것은 부처 간 이송만이 아니다. 외교부의 최종 회신을 받은 뒤 내용 가운데 사실관계와 판단 근거를 문의하기 위해 담당 부서에 여러 차례 전화했지만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 8월 24일 일본에서 귀국한 뒤인 28일 오후 3시44분에도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 아태1과로 두 차례 전화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고 문씨는 말했다.

그는 “청원에 대한 외교부 회신이 납득되지 않아 설명을 듣기 위해 지금까지 최소 여섯 차례 전화했지만 단 한 번도 담당자와 통화하지 못했다”며 “어떻게든 다른 부처로 넘기려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는 문씨의 주장이다. 그러나 청원24에 남은 기관 간 이송 날짜만 놓고 보더라도 민원이 여러 기관을 오간 사실 자체는 분명하다.

일본에서는 ‘15년 만의 한국 유족’ 기록

이 장면은 문씨가 닷새 전 일본에서 경험한 것과 대비된다. 문씨의 아버지 문순남씨는 1945년 6월 강제동원된 뒤 해방을 맞았지만 곧바로 귀국하지 못했다. 소련군에 억류돼 카자흐스탄과 시베리아 등지에서 수년간 강제노동을 한 뒤 1949년에야 한국으로 돌아왔다.

문씨는 2005년 한일협정 관련 문서가 공개된 것을 계기로 한국은 물론 일본과 러시아의 자료를 추적하며 아버지의 억류와 귀환 기록을 찾아왔다. 처음에는 한 가족의 문제였지만 조선인 시베리아 억류자 전체의 규모와 피해를 밝히는 문제로 확대됐다.

8월 23일 도쿄 추도식에서 문씨는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 강제노동 속에서 숨진 억류자들을 추모하고 아직 이름조차 확인되지 않은 피해자들의 기록을 찾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일본 언론도 이를 주목했다. <신문아카하타>는 ‘시베리아 억류 희생자 추도-한국 유족 15년 만에 참가’라는 제목으로 문씨의 참석을 보도했고, <마이니치신문>을 비롯한 신문·방송 기자들이 현장을 취재했다.

일본에서도 조선인과 대만 출신 억류 피해의 전모가 모두 밝혀진 것은 아니다. 일본 정부 역시 식민지 출신 피해 문제에 답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적어도 8월 23일 도쿄에서는 한국 유족이 추도사에 나섰고, 생존자들과 마주 앉아 증언했으며, 일본 정부 관계자와 언론이 그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에선 ‘역사의 문제’, 한국에선 ‘소관 부처 문제’

문씨가 한국 정부에 요구해온 것도 거창하지 않다. 시베리아 억류가 외교 문제라면 외교부가, 과거사 문제라면 행안부가, 여러 부처의 판단이 필요하다면 정부가 관계 부처를 모아 함께 검토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 청원 처리 과정을 보면 각 기관은 자신의 소관 여부부터 판단했고, 민원은 그 판단에 따라 다음 기관으로 이동했다.

특히 3월 19일 오후 6시10분 재외동포청에서 행안부로, 3월 20일 오전 9시20분 행안부에서 외교부로 이어진 15시간10분의 이송은 이 문제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81년 전 시베리아로 끌려간 조선인의 아들은 지난 23일 일본에서 한국 유족을 대표해 아버지 세대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다시 외교부에 전화를 걸었다.

일본에서는 그의 이야기가 ‘전후 역사의 문제’로 다뤄졌지만, 한국에서는 20년째 ‘어느 부처의 문제인가’를 놓고 답을 기다리고 있다.

문씨는 말했다. “외교부냐 행안부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어느 부처에서 처리할 것인지는 정부가 정하면 됩니다. 제가 알고 싶은 것은 대한민국이 이 문제에 답할 의지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시베리아 억류 문제는 80여 년 전의 과거사다. 그러나 한 국민의 청원이 여러 부처를 돌고 돌아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오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과거의 문제만은 아니다.

▼ 아시아엔 후원계좌 ▼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아시아엔과 아시아 저널리즘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우리은행 1005-601-878699 (주식회사 아자미디어앤컬처)

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본 광고는 Google 애드센스 광고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합니다.
Back to top button
AI 에이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