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5년 8월, 제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리고 있었다. 일본은 항복을 선언했고 세계는 전후 질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부 일본군과 조선 출신 병사들에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소련에 의해 포로로 붙잡힌 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소련 영내로 이송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용식씨는 이 과정의 핵심에 1945년 8월 내려진 스탈린의 비밀명령 9898호가 있다고 말한다. 문씨는 <아시아엔> 인터뷰에서 “8월 23일 스탈린이 일본군 가운데 건강한 사람 50만 명을 소련 영내로 이송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며 “이것이 유명한 9898호 비밀 명령”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이 명령은 단순한 포로 관리 차원이 아니었다. 소련 각 지역에 포로들을 배치하고 노동에 활용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지침이었다.
“9898호 문서에는 일본군 50만 명을 소련 영내로 보내라는 내용뿐 아니라 카자흐스탄 등 각 지역으로 몇 명씩 보낼지, 탄광·철도 건설·공장·건설 현장 등에 어떻게 배치할지까지 구체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문씨는 특히 이 문서에 수용시설 설치와 관련한 내용까지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수용소에 철조망을 설치하기 위해 800톤을 준비하라는 내용도 있고, 일본군으로부터 노획한 의복을 배당하라는 지침까지 있습니다.”
그가 강조하는 부분은 이 과정이 개인이나 현장 부대 차원의 결정이 아니라 소련 국가 차원에서 계획됐다는 점이다.
포츠담 선언 서명 뒤 내려진 소련의 명령
문씨는 9898호 명령을 이해하려면 1945년 8월 초 국제 정세를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소련은 8월 8일 일본에 대한 참전을 앞두고 포츠담 선언에 서명했고, 다음 날인 8월 9일 만주와 한반도 북부, 사할린 등지로 진격했다.
“스탈린은 포츠담 선언에 서명하고 일본에 참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일본군 포로들을 소련 영내로 보내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문씨가 문제 삼는 지점은 포츠담 선언의 내용이다. 포츠담 선언에는 일본군의 무장해제 이후 군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 평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가 담겨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련은 일본군 포로들을 소련 각지로 이송했고, 상당수는 장기간 억류와 노동에 놓이게 됐다.
“일본군 전쟁 포로가 소련의 노동력이 된 과정”
문씨는 9898호가 시베리아 억류 문제의 성격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본다. “그 문서에는 어디로 보내고, 어떤 일을 시킬 것인지가 정해져 있습니다. 단순히 포로를 관리한 것이 아니라 노동력으로 활용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조선 출신 일본군도 포함됐다. 해방은 찾아왔지만, 일본군으로 끌려갔던 조선인 일부는 곧바로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일본의 패전 이후에도 또 다른 국가 권력에 의해 이동과 노동을 강요받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80년 뒤 다시 꺼내는 9898호 문서
문용식씨가 이 문제를 계속 제기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시베리아 억류가 단순한 전쟁 후유증이 아니라, 국가가 계획하고 실행한 조치였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9898호는 당시 소련이 어떤 계획을 갖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라며 “이 문제는 해방 이후 발생한 별도의 역사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1945년 8월 23일 내려진 한 장의 비밀명령서는 80년이 지난 지금도 시베리아 억류 문제를 이해하는 핵심 자료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