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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국가는 외면했지만 시민은 외면하지 않았다…문용식씨가 묻는 ‘국가란 무엇인가’

문용식씨 부친 고 문순남씨의 유일하게 남은 사진. 부친은 휴전 후 54년 1월~58년 1월 1사단에서 복무 중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문씨는 말했다. <사진=문용식 제공>

문용식(67)씨를 안 지 10년이 넘었다. 그는 이름난 정치인도, 인권운동가도 아니다. 대구의 중소기업에서 기계 수출포장 일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온 평범한 노동자다. 그런데 나는 그를 지켜보면서 ‘시민’이라는 말의 의미를 여러 차례 다시 생각하게 됐다.

문씨에게는 평생 풀리지 않은 가족사가 있다. 아버지 문순남씨는 일제 말기인 1945년 강제동원됐다가 해방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소련군에 의해 끌려가 카자흐스탄과 시베리아 등지에서 3년 넘게 억류돼 강제노동을 했다. 겨우 귀국했지만 냉전시대의 조국은 그를 피해자로 온전히 품지 못했다. 문순남씨는 명예를 회복하지 못한 채 1974년 세상을 떠났다.

문용식씨의 선친 문순남씨가 옛소련 ‘전쟁포로 및 수용자 관리본부’에서 작성한 자필 서명 ‘文順南’이 보인다. 이 문서는 수용소 석방을 앞둔 1948년 10월 26일 작성된 것으로, 문순남은 해방 직후부터 만 3년 2개월 이상 포로나 다름없는 생활을 한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한국에 자료가 없으면 일본 정부에 문서를 요구했고, 러시아 자료도 뒤졌다.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국회와 청와대에 민원을 넣었다. 그렇게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가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민원은 부처에서 부처로 옮겨 다녔고, 책임 있는 답변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문용식씨가 요구하는 것은 돈이 아니다. “아버지와 같은 사람들이 왜 시베리아에 끌려갔으며, 국가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이 질문에 답해달라는 것이다. 피해 당사자들은 이제 모두 세상을 떠났다. 시간이 해결해준 것이 아니라, 시간이 피해자들을 데려가 버렸다.

2015년 4월 1일 캐나다 연방경찰에 압송될 당시의 전대근 목사

문씨를 이야기하면서 반드시 함께 기록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전대근 목사다. 2015년 캐나다에서 성매매 조직의 수괴라는 혐의로 체포된 전 목사는 무려 32개월을 갇혀 지내다 2017년 11월 석방됐다. 당시 국내에서는 그의 사정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문용식씨는 전 목사와 친척도 아니었고 오랜 친구도 아니었다.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데 문씨는 움직였다. 우원식 의원실에 사건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으며, 국회를 통해 외교부에 질의했다. 이후 설훈 의원실까지 나서면서 외교부와 현지 공관의 대응도 달라졌다. 감리교단에도 도움을 호소했다. <아시아엔>에도 끈질기게 자료와 소식을 보내왔다. 결국 전대근 사건은 세상에 알려졌고, 우리는 2017년 그 과정을 여러 차례 보도했다. 훗날 전 목사가 석방된 뒤에도 문씨는 캐나다 당국이 여권과 영주권카드 등을 돌려주지 않는 문제까지 추적했다.

미국에서 안수받은 후 지인과 함께 사진을 찍은 전대근 목사

그때 한 가지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자기 아버지가 국가로부터 외면당한 기억을 가진 사람이, 다른 국민이 외국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자 모른 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내 일도 해결하지 못했는데 남의 일까지 어떻게 챙기느냐”고 할 법하다. 문씨는 반대로 했다. 자신의 억울함을 겪었기에 남의 억울함을 더 빨리 알아보았다. 국가의 무관심을 경험했기에 다른 국민이 같은 일을 당하는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나는 이것을 의협심이라고 부르고 싶다. 의협심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힘없는 사람이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한 걸음 앞으로 나서는 것이다. 나와 이해관계가 없어도 “그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도 결국 이런 시민의식 위에서 작동한다. 투표하는 시민만으로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억울함에 반응하는 시민, 국가가 제 역할을 하는지 끊임없이 묻는 시민이 있어야 한다.

문용식씨

그러기에 문용식씨 이야기는 역설적이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한 시민이 대신하고 있는 동안, 정작 그 시민이 20년 가까이 국가에 요구해온 문제는 아직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시베리아 강제억류 피해는 과거사가 아니다. 피해자가 모두 세상을 떠났다고 국가의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당사자가 사라진 지금부터는 국가가 기억의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

정부가 할 일은 분명하다. 먼저 시베리아 억류 조선인들의 규모와 강제동원·억류·귀환 과정을 정부 차원에서 다시 정리해야 한다. 일본과 러시아에 흩어진 자료를 확보하고 피해자와 유족의 기록을 국가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이 문제의 법적 관계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자국 억류 피해자들에게 취했던 입법과 지원 조치 역시 면밀히 비교해야 한다.

그 위에서 명예회복과 피해지원, 필요하다면 특별법 제정까지 검토해야 한다. 외교부, 행정안전부, 재외동포청 등 어느 한 부처가 다른 부처로 민원을 넘기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 정부가 책임 부처와 창구를 정해 유족들에게 국가의 공식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나는 문용식씨가 <아시아엔>에 쓴 글의 한 제목을 기억한다. “국가란 무엇입니까?” 2018년의 질문이다. 8년이 지난 지금도 이 질문은 유효하다.

국가는 국민이 강할 때 필요한 존재가 아니다. 국민이 억울하고 외롭고 힘없을 때 가장 먼저 곁에 서라고 만든 공동체다. 해외에서 억울하게 구금된 국민에게도 그래야 하고,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희생되고 잊힌 국민에게도 그래야 한다.

문용식씨는 자기 아버지의 한을 풀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의 억울함부터 붙들었다. 전대근이라는 한 시민의 고통을 자기 일처럼 여기고 국회와 외교부와 언론의 문을 두드렸다.

이제 국가가 문용식이라는 시민의 문을 두드릴 차례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국가가 하겠습니다.”

그 한마디에서 국가의 책임은 다시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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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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