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미디어

한국기자협회 62년의 화두…”정파의 스피커가 되지 말자”

박종현 기자협회장

AI 시대에도 진실은 기자의 손과 발에서…다시 ‘질문하는 기자’로

“정당이나 정파를 위한 스피커 역할에 만족하지 마십시오.” 13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기자협회 창립 62주년 기념식에서 박종현 한국기자협회장이 정치권으로 진출한 언론계 선후배들에게 던진 말이다. 축하와 덕담이 오가는 기념식장에서 나온 말치고는 제법 매섭다. 그러나 한국기자협회가 걸어온 62년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날 행사에 가장 어울리는 말이었다.

한국기자협회는 1964년 군사정권 아래에서 언론자유를 지키려는 현장 기자들의 결의로 출범했다. 언론자유 수호, 민주주의 구현, 남북통일, 국제교류, 기자 권익옹호를 내건 5대 강령은 62년이 지난 지금도 협회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박 회장은 이날 “5대 강령을 늘 생각한다”며 언론자유는 기자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와 미래세대를 위한 가치이자 책무라고 했다. 62년 전의 강령이 낡지 않았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 언론이 아직 풀지 못한 숙제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축사를 대독하고 있는 성기홍 대통령실 홍보수석 <사진 기자협회>

이날 이재명 대통령은 성기홍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이 대독한 축사를 통해 “인공지능 기술 발전과 새로운 매체의 등장에 따라 정보의 홍수 속에서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진실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며 기자들이 신뢰와 공정이라는 언론의 가치를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정부 역시 기자들이 자유롭고 공정한 환경에서 취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언론의 비판에 귀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조정식 국회의장도 AI를 화두로 꺼냈다. 누구나 기사 형식의 글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출처와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는 정보 역시 넘쳐나고 있다며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진실을 찾는 것은 여전히 기자들의 손과 발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AI가 언론의 취재물을 사용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국회가 기자들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밝혔다.

조정식 국회의장

여야가 모처럼 같은 곳을 바라본 것도 눈에 띄었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올해가 서재필이 창간한 <독립신문> 130주년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는 치우침 없이 공평하고 공정하게 사실을 전달하려 했던 <독립신문>의 정신이 오늘날 기자들의 펜과 카메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한국프레스센터에 문을 연 기자실 ‘서재필의 방’도 언급하며 그곳이 정론직필의 거점이 되기를 기대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민주주의는 언론의 질문 위에 서 있다”고 했다. 국민을 대신해 묻고 또 물을 때 권력이 국민 앞에 겸손해질 수 있으며, 정치권은 언론의 감시와 견제를 불편해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AI와 가짜뉴스 시대일수록 기자의 책임은 오히려 무거워졌다고 했다.

이날 여러 축사 가운데 필자의 귀에 오래 남은 것은 결국 ‘질문’이라는 단어였다. 기자는 질문하는 사람이다. 대통령에게도 묻고, 국회의원에게도 묻고, 기업인에게도 묻는다. 때로는 자신이 몸담은 언론사와 자기 자신에게도 물어야 한다. 질문을 멈추는 순간 기자는 기록자가 아니라 전달자가 되기 쉽다.

기자협회 창립 62주년기념 ‘서재필방’ 4행시 공모전 수상자들. 앞줄 왼쪽 두번째는 이날 시상을 한 이춘발 전 기자협회장 <사진 기자협회>

그래서 박종현 회장이 정치권에 진출한 언론인 선후배들에게 던진 당부가 더욱 무겁게 들렸다. 언론 현장에서는 불편부당과 객관성을 말하던 사람이 정치권에 들어간 뒤 특정 정당과 정파의 대변자가 되는 모습을 후배 기자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권으로 간 언론인들이 정파의 스피커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살린 기획 전문가로 역할해 달라고 했다.

필자는 창립기념식에 참석할 때마다 축하보다는 먼저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선배들에게 물려받은 기자협회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기자협회를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있는가. 권력과 자본 앞에서 질문할 용기를 잃지는 않았는가. 기자라는 이름이 국민에게 여전히 신뢰의 이름인가.

창립 62주년 참석자들. 앞줄 가운데 박종현 기협회장을 중심으로 오른쪽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김은경 서민금융진흥원장, 백종우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장, 왼쪽으로 조정식 국회의장,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이 축하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 한국기자협회>

62년은 사람으로 치면 환갑을 지나 새로운 한 갑자를 시작하는 나이다. AI가 기사를 쓰고 몇 초 만에 세계로 퍼뜨리는 시대다. 기술은 앞으로 더 빨라질 것이다. 그러나 기자가 현장에 가야 하는 이유,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이유, 권력에 질문해야 하는 이유까지 AI가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1964년의 기자들이 ‘언론자유’를 외쳤다면 2026년의 기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책무가 더해졌다. 넘쳐나는 정보 가운데 무엇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것, 들리지 않는 사람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것, 그리고 누구의 편도 아닌 독자와 시민의 편에서 끝까지 질문하는 일이다.

한국기자협회 62년. 기념해야 할 역사인 동시에, 다시 시작해야 할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도 기자다운가?” 이 질문에 부끄럽지 않게 답할 수 있을 때 기자협회의 5대 강령은 62년 전의 문장이 아니라 오늘의 언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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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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