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교동도 유격용사 전적지…”적어도 대한민국은 나를 기억해 줄 것이다”

교동도 유격군 덕분에 지금 이 땅에 풍요와 자유가 넘치건만…<사진 황건>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한 사람 더 늘어났다”

미리 휴가를 낸 어제는 올 들어 가장 더운 날이었다. 국내외 전적지를 함께 답사한 지인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교동도에는 황해도 연백평야에서 살다가 분단 이후 내려온 사람들이 많이 산다. 그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한국전쟁 당시 유격대로 활동했고, 그들의 무덤이 교동도에 있다.”

지번과 위치를 확인하려고 전화를 걸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곳 주민들은 다 압니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 더우니 가지 마세요.”

주말이면 강화도로 향하는 길은 늘 막힌다. 결국 평일인 어제 길을 나섰다. 강화대교를 건너고 다시 교동대교를 지나 민간인통제선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시멘트길 앞에 표지판 하나가 서 있었다. 맞은편에서 군용차가 올라와 서로 길을 비켜 주며 겨우 지나갔다.

교동도 유격군 충혼비 <사진 황건>

해병대 5-A 대대 고구소초 바로 옆, 철책선 앞에 빛바랜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UN8240 을지 타이거여단 충혼비. 충혼비 앞 양쪽에는 두 마리의 호랑이가 ‘멸공’과 ‘충성’이라는 구호를 가슴에 달고 북녘 바다를 향해 묵묵히 서 있었다.

충혼비 앞에는 14기의 묘소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고 유격용사 이명준지묘’, ‘고 유격용사 김창동지묘’를 비롯한 13기의 묘와, 비교적 최근에 조성된 듯한 ‘고 선박대원 무명용사지묘’가 마지막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교동도 유격군 전적지 <사진 황건>

충혼비 뒤편 왼쪽 벽에는 전사자와 실종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유격군 타이거여단 305위, 육군 을지 제2병단 153위, 전투 중 실종 57위, 그리고 뒤늦게 확인된 전사자 31위. 모두 합하면 546명이다. 그러나 이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북녘으로 향한 마지막 발걸음이었고, 대부분은 끝내 돌아오지 못한 청춘이었다.

오른쪽 벽에는 전사한 연합군 장병 14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추모문에는 “북한에서 전투작전을 수행한 용감한 한국의 유격대원들과 미군 및 특수부대원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those who could not go home)을 기리며”라고 적혀 있었다.

교동도 유격군 전적지 안내문 <사진 황건>

8240부대는 흔히 한국인 유격대로 기억되지만, 실제로는 한국인 유격대원과 미군, 영국군 특수요원들이 함께 싸운 연합부대였다. 이 추모판은 그 사실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국적은 달랐지만, 그들이 마지막까지 지키려 했던 것은 하나였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유격대원도, 미국의 소령도, 영국의 젊은 장교도 모두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교동도의 바람은 그들의 국적을 구분하지 않는다. 자유를 위해 싸운 사람으로 함께 기억할 뿐이다.

영문과 한글로 새겨진 비문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새벽 공격을 앞둔 적막과 고요. 심장은 뛰고 있지만, 오직 눈앞의 임무만을 생각하려 애쓴다. 참호 속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평화롭다. “…적어도 대한민국은 나를 기억해 줄 것이다.”(…at least in South Korea they will remember me!)

교동동 유격군 전적지 원경 <사진 황건>

전쟁은 승리를 기념하는 기념비를 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나라를 지킨 것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희생이었다. 교동도의 충혼비는 그 사실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었다. 그들이 남긴 것은 영토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였다.

돌아 나오며 다시 입구를 올려다보았다. 색이 바랜 현판에는 희미하게 이런 글귀가 남아 있었다. “나라사랑 유격군 전적지 방문을 감사드리며 안녕히 가십시오.” 햇볕과 바람에 글씨는 거의 지워져 있었지만, 그 인사는 오히려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충혼비에 새겨진 문장이 떠올랐다.

교동도 유격군 유훈은 저 석상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시민들이 지켜주리라. 깨어있는 참시민… <사진 황건>

“…적어도 대한민국은 나를 기억해 줄 것이다.”

나는 오늘 그 약속이 아직 지켜지고 있는지 확인하러 왔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한 사람 더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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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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