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사람

“능력자는 많지만, 믿을 사람은 드뭅니다”

검증과 계산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한 사람은 신뢰의 손길 앞에 서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배신을 아시면서도 먼저 믿으셨고, 그 신뢰는 결국 평범한 사람들을 세상을 바꾸는 증인으로 세웠다. 신뢰는 완벽한 증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먼저 내어주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AI 생성 이미지>

“스스로를 성실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으나, 누가 참으로 믿을 만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느냐?”(잠 20:6, 새번역)

능력 좋은 사람은 많습니다. 하지만 믿을 만한 사람은 드뭅니다. 머리 좋은 사람에게 맡길 수 있는 일이 있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만 맡길 수 있는 일이 따로 있습니다.

솔로몬도 그게 고민이었습니다. 지혜의 왕 주변에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능력자들이 얼마나 몰려들었겠습니까? 저마다 앞다투어 자기를 PR했을 것입니다. 자기가 얼마나 성실한지, 지금까지 얼마나 완벽하게 일해왔는지. ‘나 한번 믿어달라’ 외치는 사람은 차고 넘쳤지만, 그중에 진짜 믿을 만한 사람을 찾는 건 지혜의 왕에게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과연 믿을 만한 사람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요?

세상은 누가 믿을 만한지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검증을 시도합니다. 신뢰도 평가 시스템을 만들고, 신용을 보증할 장치를 마련하고, 때로는 뒷조사까지 합니다. 감시와 평가와 인증이 촘촘해질수록 신뢰가 보장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검증이 늘어날수록 사회 전반의 신뢰는 오히려 메말라 갑니다. 증명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불신의 증명 아닌가요?

서로 믿을 수 있는 관계가 가장 안전한 관계이지만 사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습니다. 신뢰는 안전을 확보하는 일이 아니라, 기꺼이 위험해지기로 작정하는 일입니다. 신뢰에는 늘 ‘아직까지’라는 단서가 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배신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뢰는 모든 증거를 검토한 후에 내린 결론이 될 수 없습니다. 증거가 완벽하게 갖춰져야만 믿는다면 그건 신뢰가 아니라 계산입니다. 진정한 신뢰는 검증의 산물이기보다 검증을 면제한 결과입니다. 배신을 감내하겠다는 각오입니다. 부부가 서로를 검증하기 시작하면 그 관계는 그날로 끝입니다. 상호 검증을 뛰어넘어야 생기는 것이 신뢰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끝까지 검증했습니다. 속으로 평가하고 저울질하며 이분이 ‘내 인생을 걸 만큼 믿을 만한가’를 재고 또 쟀습니다. 결과는 배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제자들의 배신을 각오하셨습니다. 검증 절차를 뛰어넘으셨습니다. 결과는 배신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검증을 뛰어넘은 신뢰는 결국 배신마저 뛰어넘었습니다. 예수님의 그 무모한 신뢰가 끝내 제자들을 가장 믿음직한 증인들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딤후 2:13)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 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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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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