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호 결재가 ‘현금 살포’인 지방자치, 경영 마인드는 어디로 갔나?
신임 자치단체장이 취임식 직후 들어 올린 ‘1호 결재’ 펜 끝에서 나온 것이 결국 ‘돈 풀기’ 계획이었다. 부산 기장군의 신임 군수가 임기 내 1인당 100만 원의 민생활력지원금을 지급하겠다며 조례 제정안을 1호로 처리했다는 소식은 참으로 경악스럽다.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지역의 기초 체력을 다지고 당면한 문제를 진단하기보다, 당장 눈앞의 환심을 사기 위한 현금성 지원부터 결재한 것이다.
이를 기업 경영에 대입해 보면 그 황당함이 더욱 명확해진다. 새로 취임한 최고경영자(CEO)가 회사의 체질 개선이나 미래 먹거리 발굴은 제쳐 두고, 취임 축하금 명목으로 전 직원에게 100만 원의 보너스부터 지급하겠다고 결재한 꼴이다.
글로벌 비즈니스 현장에서 많은 조직을 이끌어 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리더가 부임한 직후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조직의 강점과 약점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우리가 처한 외부 환경과 경쟁 상황을 분석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이를 바탕으로 임기 내에 달성해야 할 중장기 목표와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경영학이 제시하는 기본 원칙이자 리더의 책무다.
지방자치단체 운영 역시 공공성을 담보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기업 경영의 원칙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우선순위로 배치하느냐에 따라 지역의 미래가 바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장군수의 소속 정당을 불문하고 보여준 이 같은 행태는 군정(郡政)을 이끌 리더로서의 마인드가 근본적으로 결여되어 있음을 방증한다. 어떻게 하면 지역을 자립시키고 지속 가능하게 잘 살도록 만들지 고민하는 대신, 당장의 달콤한 현금 지원을 앞세우는 모습은 한심함을 넘어 씁쓸함마저 자아낸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1호 현금 살포’가 비단 기장군만의 일탈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국의 수많은 지자체장들이 임기 시작과 동시에 약속이나 한 듯 ‘재난지원금’, ‘일상회복지원금’ 등의 명목으로 현금성 복지를 1호 과제로 들고 나온다. 일례로 과거 경기도의 사례처럼 새로운 단체장이 취임한 후 전임 세력의 무분별한 재정 운영과 그로 인한 처참한 재정 상황을 마주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폭로가 나오는 것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너도나도 곳간을 열어 돈을 뿌리겠다고 경쟁하는 모양새다.
지자체의 열악한 재정자립도는 뒤로한 채, 우선순위가 통째로 뒤바뀐 이 기막힌 현실은 결국 유권자들의 수준과도 직결된다. 장기적인 지역 발전과 인프라 구축을 통한 근본적인 해결책보다 당장 내 지갑에 들어오는 몇십만 원의 현금에 표를 던지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단체장의 한심한 우선순위 탓인지, 아니면 당장의 현금 지원에만 안주하는 지역민의 민도 탓인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를 악순환이다.
대한민국은 경제 규모와 지표만 놓고 보면 엄연한 선진국이다. 그러나 정치와 지방자치의 행태를 보면 부끄러울 정도로 수준이 떨어진다. 단체장들은 표를 사기 위해 돈을 뿌리고, 주민들은 이에 현혹되는 구조라면 지방자치가 도대체 왜 필요한가. 지역 발전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이런 식의 지방자치라면 차라리 무용론(無用論)을 제기하는 것이 마땅하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선심성 복지를 베푸는 시혜자가 아니다. 주민이 낸 혈세를 가장 효율적으로 집행해 지역의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 ‘전문 경영인’이어야 한다. 지금처럼 인기에 영합한 포퓰리즘으로 임기를 시작하는 행태가 지속된다면, 그 지자체의 미래는 물론 국가 재정의 건전성 역시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제는 지방자치의 구조와 마인드 자체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당장의 현금 100만 원이 아니라, 지자체를 살릴 냉철한 경영 마인드와 우선순위의 재정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