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소학섭의 고려인청소년㉖] 뿌리가 같은 동생들을 만난 날

너무 아름답다. 천사다. <사진 소학섭>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안성시 다함께돌봄센터 1호점 고려인 아동과 함께

한 달 전, 나는 안성시 다함께돌봄센터 1호점 박진숙 센터장에게 조심스럽게 제안 하나를 건넸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우리 학교 형, 언니들과 어린 동생들이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박 센터장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흔쾌히 승낙했다. 프로그램은 자신이 준비하겠다고 했다.

박진숙 센터장은 추진력과 기획력이 뛰어난 분이다. 이주배경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시청이든 도청이든 어디든 찾아간다. 문을 두드려야 할 곳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두드리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어떻게든 길을 만들어낸다. 나는 그런 박 센터장을 볼 때마다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나는 무언가를 부탁하려면 먼저 상대방의 표정부터 살피는 소심한 사람인데, 박 센터장은 아이들을 위한 일 앞에서는 주저함이 없다.

아이들을 데려오는 일은 내가 맡았다. 학교의 25인승 버스를 직접 운전해 돌봄센터로 가서 로뎀으로 데려오기로 했다. 아침부터 아이들에게 줄 음식을 준비하는 일은, 지금까지 늘 그랬듯 아내의 몫이 되었다. 나는 눈치 아닌 눈치를 보며 말을 흐렸다. “아이들이 많이 오니까…… 조금 넉넉히 주문하면 좋을 것 같은데.”

로뎀의 형 언니 오빠들과 함께 무궁화를 만드는 잠시 카메라에 포즈를 취했다.

내 마음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는 대개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준비해 놓는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의 양을 듣고 나도 놀랐다. 피자 열네 판과 치킨 여섯 상자였다. 그럴 줄 알았다. 혼자 웃었다. 그런데도 나는 이상하게 부족한 마음이 든다. 가진 것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 오지랖이 넓은지 모르겠다. 아마도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그 어린 손에 무엇이라도 하나 더 쥐여 보내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때문일 것이다.

로뎀 아이들에게는 평소 먹으려고 모아 둔 간식들을 꺼내 작은 지퍼백 서른 개에 나누어 담으라고 했다. 학생 임원들과 선생님들이 둘러앉아 과자와 사탕을 하나씩 맞춰 넣었다. 아이들은 누구에게 줄 선물인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즐거워했다. 얼굴도 모르고,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도 모르고, 아직 한 번도 만나지 않은 동생들을 위해 간식을 담으면서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아이들도 알고 있는 것일까. 고려인의 뿌리가 우리와 하나라는 사실을.’

아니면 자신들이 먼저 겪었던 낯선 한국 생활을 어린 동생들도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까.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했던 시간, 친구를 사귀는 것이 두려웠던 순간,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것 같았던 외로움을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한 봉지, 한 봉지 간식을 채우는 아이들의 손길 속에는 단순한 선물 이상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오늘 만날 어린 동생들을 향한 기다림이었다.

집중 또 집중

그날 따라 날씨는 유난히 더웠다. 학교 버스 안은 바깥보다 더 뜨거웠다. 에어컨이 고장 난 지 오래였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에어컨 레버를 끝까지 돌려 놓았다. 갑자기라도 찬바람이 나올지 모른다는, 아무 근거 없는 기대 때문이었다.

다함께돌봄센터 앞에 버스를 세우고 기다리자 아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멀리서부터 뛰어오는 아이, 자전거를 타고 오는 아이, 실내화 주머니를 빙글빙글 돌리며 걸어오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오늘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는 듯했다. 버스를 발견한 얼굴마다 설렘이 가득했다. 아이들이 차례로 버스에 오르자 뜨거웠던 버스 안도 금세 재잘거리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

무사히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에 도착하니 현관 앞에서 로뎀 아이들이 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만난 사이였다. 그런데도 로뎀 아이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동생을 맞이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어린아이들의 손을 잡고 본당으로 안내하는 모습은 친오빠 같았고, 친언니 같았으며, 든든한 형 같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니 마음 한편이 뭉클해졌다.

우리는 하나

‘그래, 뿌리는 하나였구나.’

살아온 나라와 시간은 서로 달랐지만 아이들은 서로를 낯설어하지 않았다. 어른들이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이 먼저 마음을 알아보는 것 같았다.

본당에서는 일찍부터 도착한 박진숙 센터장이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이크가 없어도 충분할 만큼 힘 있는 목소리가 본당 안을 가득 채웠다. 아이들을 향한 그의 열정도 그 목소리만큼이나 크고 분명했다.

아이스 브레이킹부터 남달랐다. 첫 순서로 아이들은 6·25전쟁에 관한 영상을 보았다. 전쟁이 남긴 분단의 아픔과 우리가 살아가는 평화의 의미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평화가 당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임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영상이 끝난 뒤에는 모두 함께 평화 선언문을 읽었다.

이어 어린아이들은 로뎀의 형과 오빠, 언니들이 이끄는 팀에 들어갔다. 조금 전까지 서로 이름도 모르던 아이들이 어느새 한 가족처럼 둘러앉았다. 커다란 한반도 그림 위에 무궁화를 그리고 색칠하며 자신들만의 평화 지도를 완성해 갔다.

프로그램 하나하나에 박진숙 센터장의 세심한 기획이 담겨 있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감탄이 나왔다. 아이들의 손놀림도 제법 진지했다. 형과 언니들이 어린 동생들의 손을 잡아 주고, 잘 그렸다며 칭찬해 주자 낯설어하던 아이들의 얼굴에도 금세 웃음이 번졌다.

본당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웃음은 창문을 넘어 학교 밖으로 흘러나갔고, 하루 종일 세상을 달구었던 뜨거운 해를 서쪽 바다 너머로 조금씩 밀어내는 것 같았다.

즐거운 시간은 언제나 너무 빨리 지나간다.

이제 끝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형과 언니 곁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어 했다. 보내야 하는 마음과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어쩌면 사랑은 그런 것인지 모른다.

처음 만났지만 헤어지는 것이 아쉽고, 오늘 만났지만 내일도 다시 보고 싶은 마음. 함께한 시간이 끝나는 순간,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게 되는 마음.

오늘의 만남은 단순한 하루의 행사를 넘어 아이들의 마음과 마음 사이에 작은 무지개 하나를 놓고 있었다. 그 무지개는 ‘다음에 다시 만나자’는 말 없는 약속이었다.

하루 종일 뜨거운 햇볕 아래 서 있던 버스 안은 다시 찜통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고장 난 에어컨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건넸다. 아이스크림은 입안에서 녹기보다 버스 안에서 더 빨리 녹아버렸다.

나는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아이들을 무사히 돌봄센터로 데려다주는 것으로 오늘의 일정은 끝날 것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서는 무언가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버스가 천천히 학교를 떠날 때, 뒤쪽에서 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사님, 다시 오고 싶어요.” 아직 서툰 한국어였다. 하지만 그 말은 어떤 유창한 문장보다 또렷하게 내 마음에 닿았다.

나는 운전대를 조심스럽게 잡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그래. 다시 만나자. 다음에는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많이 사랑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뜨거웠던 버스 안에는 여전히 찬바람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돌아가는 길은 더 이상 덥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남긴 한마디가 내 마음속에서 시원한 바람이 되어 불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오고 싶어요.”

오늘 우리는 서로 처음 만났지만,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있던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는 곳은 달랐지만 뿌리는 하나였고, 사용하는 말은 서툴렀지만 마음은 이미 서로의 말을 알아듣고 있었다.

그렇게 로뎀나무 아래에서 형과 언니, 그리고 어린 동생들이 다시 한 가족이 되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작은 무지개가 조용히 떠올랐다.운데서도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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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섭

(사)청소년미래연구 이사장,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이사장 겸 교장, 다문화전문가 2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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