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커피보다 사람을 남긴 카페…혜화동 사랑방 ‘메르시’ 9년의 마지막 인사

메르시의 문은 6월 30일 닫히지만, 이곳을 드나들던 사람들의 마음속 문은 오래도록 열려 있을 것이다.

“9년간 보내주신 따뜻한 사랑,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얼마 전, 지난 4월 말까지 아시아기자협회 사무실이 있던 서울 혜화동의 한 카페 앞에 걸린 안내문 하나가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문을 닫는다는 소식보다 마지막까지 손님들에게 건네는 감사의 인사가 먼저 마음에 들어왔다. 함께 웃고 울었던 시간을 추억하고,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감사와 축복을 담은 그 짧은 문장은 오래 시선을 붙잡았다.

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던 카페, 커피보다 사람 냄새가 먼저 나던 공간, 혜화동 사랑방 ‘메르시(Merci)’가 오는 6월 30일 문을 닫는다.

메르시 카페 앞 화초들은 동네 주민들이 하나둘 가져다 놓은 것이라고 한다.

메르시는 프랑스어로 ‘고맙습니다’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이곳은 지난 9년 동안 감사와 정, 위로가 오가는 공간이었다.

누군가는 출근길에 들러 하루를 시작했고, 누군가는 친구와 마주 앉아 오랜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잠시 쉬어가는 엄마들의 자리도 있었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찾는 손님도 있었다. 그렇게 메르시는 단순한 카페를 넘어 지역 주민들의 일상과 추억이 쌓이는 사랑방이 되었다.

메르시가 사랑받은 이유는 화려한 인테리어나 특별한 마케팅 때문이 아니었다. 커피보다 정성이 있었고, 그 정성은 결국 사람에게 향해 있었다.

김진숙 사장은 계절마다 직접 메뉴를 준비했다. 신선한 샐러드는 물론이고, 추운 날이면 따뜻한 단팥죽을 끓였고 겨울이면 붕어빵도 손님들에게 내놓았다. 기성품보다 손수 만든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더 소중하게 여겼다. 그 손맛은 손님들이 메르시를 찾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단골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는 것은 음식이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언제 가도 반갑게 맞아주셨다.”
“힘든 날 잠시 들렀다가 위로를 받고 나왔다.”
“커피 맛도 좋았지만 사장님의 미소가 더 좋았다.”

손님들의 기억 속 메르시는 카페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공간이었다.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은 메르시에도 큰 시련이었다. 거리에는 사람이 줄었고 소상공인들의 한숨은 깊어졌다. 그래도 메르시는 그 시간을 견뎌냈다. 어려운 시기에도 문을 닫지 않고 지역 주민들과 함께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에도 회복되지 못한 소비심리와 길어진 경기 침체, 높아진 운영비 부담은 작은 가게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짐이었다. 최근 혜화동 일대에도 저가형 프랜차이즈 카페와 외식 브랜드들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골목상권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전국적으로 자영업 폐업이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하는 가운데 메르시 역시 결국 이달 말 9년의 여정을 마무리하게 됐다.

메르시의 폐업이 유독 아쉽게 느껴지는 이유는 카페 하나가 사라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동네마다 하나쯤 있던 ‘우리들의 공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커피를 마시는 곳은 많아졌지만, 안부를 묻고 이름을 기억하며 사람 사이의 온기를 나누는 공간은 점점 귀해지고 있다. 메르시는 바로 그런 공간이었다. 그래서 메르시의 마지막 인사는 더욱 따뜻하고, 더욱 먹먹하게 다가온다.

김진숙 사장은 마지막 안내문에서 손님들에게 감사와 축복을 전했다. “9년간 보내주신 따뜻한 사랑, 깊이 간직하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라는 인사를 남겼다. 끝까지 자신보다 손님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은 메르시다운 마지막 모습이었다.

9년 동안 손님들에게 건네던 인사가 이제는 마지막 작별 인사가 되었다. 그러나 단골들은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9년 동안 쌓아온 신뢰와 정성, 손맛과 친절은 가게 문이 닫힌다고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또 다른 시작을 응원하는 힘이 된다.

메르시 내부

메르시의 불은 꺼지지만, 그곳에서 나누었던 인사와 웃음, 위로와 온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좋은 공간은 오래 운영된 곳이 아니라 오래 기억되는 곳이다.

역대 최고 수준의 자영업 폐업이 이어지는 지금, 메르시의 마지막 인사는 한 카페의 작별을 넘어 우리 골목과 공동체의 미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메르시는 커피를 팔았지만, 결국 사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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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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